2016년 런던 퀸메리대 논문 원문 확인… 널리 퍼진 요약은 사실과 달랐다
범죄 프로파일링 통계 모델을 그래피티에 적용 히트스코어 상위 10%에 든 곳은 ‘집·단골 술집·모교’가 아니었다
미키 기자
지난 3월 로이터통신이 뱅크시의 정체를 로빈 거닝엄으로 지목하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함께 소환된 것이 2016년 발표된 한 편의 논문이다. 범죄 수사 기법인 지리 프로파일링을 뱅크시의 작품 위치에 적용해 같은 인물을 특정했다는 연구다.
국내외 여러 매체와 콘텐츠에서 이 연구는 대체로 이렇게 요약됐다. “런던 벽화 140점의 위치를 모델에 넣었더니 추정 거점이 거닝엄의 집, 단골 술집, 과거 거주지 세 곳과 정확히 겹쳤다.”
본지가 논문 원문(Journal of Spatial Science 61권 1호, 185~190쪽)을 확인한 결과, 이 요약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결과는 더 흥미롭고, 동시에 더 조심스럽다.
1. 누가, 무엇을 했나
논문 제목은 ‘Tagging Banksy: using geographic profiling to investigate a modern art mystery’다. 2016년 3월 3일 온라인 게재됐다.
주목할 것은 저자들의 소속이다. 제1저자 미셸 하우게(Michelle V. Hauge)와 마크 스티븐슨(Mark D. Stevenson), 교신저자 스티븐 르 콤버(Steven C. Le Comber)는 모두 런던 퀸메리대(QMUL) 생물화학부(School of Biological and Chemical Sciences) 소속이다. 공저자 킴 로스모(D. Kim Rossmo)는 미국 텍사스주립대 형사사법대학 지리공간정보수사센터에 있다.
미술사학과도, 언론학과도 아니다. 생물학자들이 범죄학자와 함께 쓴 논문이다.

지리 프로파일링이란
지리 프로파일링은 연쇄살인, 강간, 방화 같은 연쇄범죄 수사에서 방대한 용의자 명단의 우선순위를 매기기 위해 개발된 통계 기법이다. 범행 지점들의 좌표를 입력하면 ‘범인 거주지’일 확률 분포를 지도 위에 계산해준다. 캐나다 기마경찰, 미국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 로스앤젤레스 경찰, 영국 국가범죄청, 미국 해병대 등이 실제로 운용한다.
핵심 전제는 단순하다.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반경 안에서 움직이되, 집 바로 앞은 피한다는 것이다.
이 기법이 성공하면서 적용 범위가 생물학과 역학으로 넘어갔다. 논문 참고문헌에 올라 있는 선행 연구만 봐도 감염병 통제 대상 선정, 침입종 관리, 백상아리의 사냥 패턴 분석, 호박벌의 먹이 탐색 모델 검증이 있다. 뱅크시 연구는 그 연장선에 있다.
연구진이 사용한 것은 디리클레 과정 혼합(DPM) 모델이다. 군집 개수를 미리 지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발원지가 몇 개인지 모르는 상황에 적합하다. 분석은 R 환경에서 Rgeoprofile 패키지와 마르코프 연쇄 몬테카를로(MCMC) 기법으로 수행됐다.
2. 실제 데이터 — 140점은 런던 벽화가 아니다
연구진은 뱅크시 공식 웹사이트와 마틴 불(Martin Bull)의 작품 위치 안내서를 토대로 후보지를 뽑은 뒤, 모든 지점을 직접 방문했다. 작품이 남아 있으면 GPS 좌표를 기록했고, 이미 덧칠돼 사라진 경우 사진 속 주변 건물을 대조해 위치를 복원했다. 복원이 불가능한 지점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확인된 작품은 총 192점(런던 164, 브리스톨 28)이었고, 이 가운데 정확한 좌표를 확보한 것이 **140점(런던 118, 브리스톨 22)**이다.
즉 널리 인용되는 ‘140점’은 런던만의 숫자가 아니라 두 도시를 합친, 그것도 좌표 확정에 성공한 것만 추린 수치다.
모델 설정에서 시그마는 0.01로 뒀는데, 이는 도시 환경에서 범죄자의 전형적 이동 거리인 약 900미터에 해당한다. 이 값에서는 작품의 95퍼센트가 발원지로부터 약 2킬로미터 이내에 놓일 것으로 기대된다.

3. 실제 결과 — 상위 10%에 든 곳과 들지 못한 곳
연구진이 검증한 ‘용의자 관련 지점’은 모두 7곳이었다. 언론 보도와 선거인명부 검색으로 추린 곳들이다.
성능 지표는 히트스코어(HS) 백분율이다. 범행 지역 전체 중 몇 퍼센트를 뒤져야 거주지에 도달하는지를 나타내며, 낮을수록 정확하다. 우선순위 없이 무작위로 뒤질 경우의 기댓값이 50퍼센트다.
| 구분 | 지점 | 히트스코어 |
|---|---|---|
| 런던 | 조이 밀워드(배우자) — 올드스트리트 일대 | 0.7% |
| 런던 | 조이 밀워드(배우자) — 그레이트노스로드 일대 | 3.8% |
| 런던 | 로빈 거닝엄 — 킹스랜드로드 일대 | 37.5% |
| 브리스톨 | 로빈 거닝엄 자택 — 이스턴 지역 | 5.5% |
| 브리스톨 | 뱁티스트밀스 초등학교 운동장 | 6.8% |
| 브리스톨 | 펍 ‘The Plough’ (이스턴) | 23.0% |
| 브리스톨 | 브리스톨 대성당학교(모교) | 40.1% |
굵게 표시한 4곳이 지오프로파일 상위 10퍼센트에 들었다.
여기서 통념과의 차이가 드러난다.
첫째, 거닝엄 본인의 런던 주소는 상위 10퍼센트에 들지 못했다. 2004~05년 제이미 이스텀과 함께 살았던 킹스랜드로드 주소의 히트스코어는 37.5퍼센트로, 무작위 탐색 기댓값(50퍼센트)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그쳤다.
둘째, 단골 술집과 모교도 마찬가지다. 거닝엄이 축구를 했던 펍 The Plough는 23.0퍼센트, 모교인 브리스톨 대성당학교는 40.1퍼센트였다. ‘단골 술집이 겹쳤다’는 서술은 논문 결과와 맞지 않는다.
셋째, 가장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은 배우자의 옛 주소였다. 런던 지오프로파일의 최고점은 조이 밀워드의 옛 주소에서 500미터 이내에 있었다. 총 399.0제곱킬로미터의 조사 구역 중 15.2제곱킬로미터만 뒤지면 되는 정확도다.
브리스톨에서는 이스턴 자택과 초등학교 운동장이 상위 10퍼센트에 들었고, 12.7제곱킬로미터 중 1제곱킬로미터 미만 탐색으로 두 곳 모두에 도달할 수 있었다.
4. 연구진 스스로가 남긴 유보
논문의 결론부는 흔히 인용되는 것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연구진은 다른 진지한 후보군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분석만으로 뱅크시의 정체에 관해 확정적 진술을 하기는 어렵다고 명시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런던과 브리스톨 두 지오프로파일의 최고점이 거닝엄과 연관된 주소들을 포함한다는 것이며, 이는 그가 뱅크시라는 가설을 일부 뒷받침한다는 정도라는 것이다.
논문에는 별도의 윤리 각주도 붙었다. 거닝엄 본인과 친족의 사생활을 인지하고 존중하며, 이미 공개된 정보만 사용했고 정확한 주소는 의도적으로 생략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표에는 위경도가 빠져 있다.
게재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이 논문은 예정보다 늦게 공개됐다. BBC는 게재 당일인 2016년 3월 3일 보도에서, 뱅크시 측 변호인단이 이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홍보될지를 두고 우려를 표하며 출판사에 연락했고 그 때문에 공개가 지연됐다고 전했다.
이후 학계에서는 이 연구의 방법론적·윤리적 엄밀성을 문제 삼는 반박이 나왔다. 미술사 연구자 페테르 벵트센(Peter Bengtsen)은 실명 후보를 특정한 이 연구가 방법론상 여러 결함을 안고 있어 정체 판정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이 논문은 후보를 발굴한 연구가 아니라 이미 나와 있던 후보를 검증한 연구다. 거닝엄이라는 이름은 2008년 데일리메일 보도에서 이미 등장했고, 연구진은 그 이름에서 출발해 좌표를 맞춰본 것이다. 표적 검증이지 무작위 탐색이 아니다.
5. 유학 관점에서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
한국 학생과 학부모에게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뱅크시가 누구냐’와 무관한 곳에 있다.
이 논문은 생물화학부에서 나왔다. 범죄학 도구를 가져다 미술계 미스터리에 적용했고, 같은 저자들이 같은 모델로 감염병 통제와 침입종 관리 논문을 썼다. 참고문헌 목록에 백상아리 포식 패턴과 호박벌 먹이 탐색이 나란히 올라 있다.
영국 대학의 연구 구조에서 학과 이름은 생각보다 경계가 아니다. 도구가 통하면 대상은 갈아 끼운다. 통계 모델 하나를 제대로 다루면 범죄학, 생태학, 역학, 심지어 미술사까지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이 논문이 그대로 보여준다.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 입장에서 실질적인 함의는 두 가지다.
첫째, 학과명보다 도구다. 이 연구를 수행하는 데 실제로 필요했던 역량은 베이지안 통계에 대한 이해, R 프로그래밍, 그리고 공간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이다. 논문에 명시된 사용 도구가 R과 Rgeoprofile 패키지, MCMC다. 생물학 전공자든 지리학 전공자든 형사사법 전공자든, 이 세 가지가 되면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둘째, 수학은 진입로다. 지리 프로파일링은 확률 분포와 군집 분석 위에 서 있다. 디리클레 과정 혼합 모델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통계학 기초가 필요하다. A레벨이나 IB에서 수학과 통계를 붙잡고 있는 학생이라면, 그 과목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계리사나 금융공학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동시에 이 논문은 데이터 분석의 한계도 함께 가르친다. 모델이 최고점으로 지목한 곳은 당사자의 집이 아니라 배우자의 옛 주소였고, 정작 본인 주소는 하위권이었다. 상관과 인과는 다르고, 통계적 뒷받침은 증명이 아니다. 연구진 자신이 결론부에서 그 선을 분명히 그었다.

6. 그래서 로이터 보도와는 어떤 관계인가
시간 순서로 정리하면 이렇다.
- 2008년 데일리메일·메일 온 선데이가 2004년 자메이카 사진을 역추적해 ‘로빈 거닝엄’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면화
- 2016년 퀸메리대 연구진이 지리 프로파일링으로 그 가설을 통계적으로 검증. 법적 사유로 게재 연기 후 3월 공개
- 2026년 3월 13일 로이터가 2000년 뉴욕 체포 기록의 자필 자백서와 2022년 우크라이나 출입국 기록을 확보해 “논쟁의 여지 없이”라고 결론
즉 2016년 논문은 로이터 보도의 증거가 아니라, 로이터가 뒤늦게 물증으로 메운 18년 묵은 가설의 중간 지점이다. 통계는 확률을 좁혔을 뿐이고, 이름을 확정한 것은 종이 문서였다.
뱅크시 본인과 법률 대리인은 지금까지 이를 인정한 바 없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
본 기사에 나오는 히트스코어 수치와 작품 수는 논문 원문 표와 본문에서 직접 확인한 값이다. 다만 ‘로빈 거닝엄이 뱅크시’라는 명제 자체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며, 논문 저자들도 결론부에서 확정적 진술을 유보했다.
참고자료
- Hauge, M.V., Stevenson, M.D., Rossmo, D.K., Le Comber, S.C., “Tagging Banksy: using geographic profiling to investigate a modern art mystery”, Journal of Spatial Science, 61(1), 185–190, 2016. 3. 3. 온라인 게재. https://doi.org/10.1080/14498596.2016.1138246
- 논문 전문(PDF). https://dlab.epfl.ch/teaching/spring2020/cs727/papers/hauge2016tagging.pdf
- 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기관 리포지터리(QMRO), 해당 논문 등록 페이지. https://qmro.qmul.ac.uk/xmlui/handle/123456789/12473
- Taylor & Francis, Journal of Spatial Science 61권 1호 초록.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4498596.2016.1138246
- Jonathan Webb, “A study that tests…”, BBC News Online, 2016. 3. 3. (뱅크시 측 변호인단의 출판사 접촉 및 게재 지연 경위. FrogHeart 정리본을 통해 확인) https://www.frogheart.ca/?tag=tagging-banksy-using-geographic-profiling-to-investigate-a-modern-art-mystery
- Hypebeast, “Banksy is Robin Gunningham According to Scientists at 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2016. 3. 6. (변호인단 접촉으로 인한 연구 지연) https://hypebeast.com/2016/3/banksy-identity-robin-gunningham
- The Oxford Culture Review, “‘Tagging Banksy’, and why it matters”, 2016. 3. 9. https://theoxfordculturereview.com/2016/03/09/tagging-banksy-and-why-it-matters/
- Geography Realm, “Geographic Profiling of Banksy”. https://www.geographyrealm.com/geographic-profiling-banksy/
- ResearchGate, 해당 논문 페이지 및 방법론·윤리 비판 논문 초록.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97592034_Tagging_Banksy_using_geographic_profiling_to_investigate_a_modern_art_mystery
- Boing Boing, “Banksy conclusively identified by Reuters as Robin Gunningham”, 2026. 3. 16. https://boingboing.net/2026/03/16/banksy-conclusively-identified-by-reuters-as-robin-gunningham.html
- Art Threat, “Who is Banksy? Artist finally revealed as Robin Gunningham in Reuters probe”, 2026. 3. 19. https://artthreat.net/10413-42899-who-is-banksy-artist-finally-revealed-as-robin-gunningham-in-reuters-probe/
- Joseph, C.A., “Graffiti artist Banksy unmasked… as a former public schoolboy from middle-class suburbia”, Daily Mail, 2008. 7. (논문 참고문헌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