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9월 모평 영어 34번이 보여주는 것 — 두 시험은 다른 능력을 잰다
2027학년도 9월 모의평가(2026년 9월 시행) 영어영역에서 빈칸추론 34번이 고난도 문항으로 꼽혔다. 국내 입시 매체들은 이 문항이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문항의 지문에는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문장 구조도 복잡하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대부분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려웠는가. 이 질문의 답이, 국내에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과 해외 대학에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왜 같지 않은지를 설명한다.
이 문항이 요구한 것
지문은 농담의 작동 원리를 다룬다. 놀라움이 농담의 핵심이고, 농담을 하는 사람의 기술은 듣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놀라움의 양을 정확히 가늠하는 데 있다는 내용이다.
이어서 제리 사인펠드의 비유가 인용된다. 농담을 하는 것은 협곡을 뛰어넘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도입부가 이쪽 절벽이고 펀치라인이 건너편 절벽이다. 여기서 지문은 두 가지 실패를 제시한다.
- 두 절벽이 너무 멀면 듣는 사람이 건너오지 못한다
- 두 절벽이 너무 가까우면 그냥 걸어서 넘어가고, 뛰어넘는 짜릿함이 사라진다
빈칸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듣는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 농담을 더 즐기는가.
정답은 4번, 약간의 수고를 해야 할 때다.
여기에 이 문항의 성격이 드러난다. 정답에 해당하는 문장이 지문에 없다. 지문은 실패 조건만 두 개 제시하고 끝난다. 학생은 두 번째 실패 조건을 뒤집어, 지문이 말하지 않은 결론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오답이 설계된 방식
선택지 다섯 개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학생을 끌어당긴다.
1번은 지문에 실제로 등장한 단어를 다른 맥락에서 가져왔다. 지문에서 ‘편안함’은 농담을 하는 사람이 세우는 여러 가정 중 하나로 언급될 뿐인데, 그 단어를 본 기억이 선택을 유도한다.
2번은 놀라움이라는 대전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지문을 절반만 읽으면 고를 수 있다.
3번은 지문에 근거가 전혀 없다.
5번이 가장 정교한 함정이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더 즐긴다는 진술은, 지문의 첫 번째 실패 조건인 ‘너무 멀면 건너오지 못한다’와 표면적으로 닮았다. 하지만 지문은 그것을 실패로 규정했다. 실패 조건을 성공 조건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구조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 문항은 영어를 다 알아들은 학생도 틀리게 되어 있다. 해석은 조건이지 답이 아니다.
IELTS는 무엇을 묻는가
같은 지문을 IELTS 방식으로 출제한다면 문항은 다르게 생겼을 것이다.
IELTS Reading의 기본 구조는 지문 안에 있는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답은 반드시 지문에 존재하되, 문항에서는 다른 표현으로 바뀌어 있다. 학생이 하는 일은 세 가지다.
- 문항이 지문의 어느 위치를 가리키는지 찾는다
- 바뀐 표현이 같은 뜻인지 판정한다
- 지문이 말한 범위를 넘어선 진술을 걸러낸다
TRUE / FALSE / NOT GIVEN 문항이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NOT GIVEN은 ‘틀렸다’가 아니라 ‘지문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문의 경계를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을 묻는다.
Matching Headings, Summary Completion도 마찬가지다. 지문이 실제로 한 말의 범위 안에서 판단한다.
즉 IELTS는 없는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 능력을 본다. 반면 34번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본다. 방향이 반대다.
두 시험이 재는 능력
| 수능·모평 영어 | IELTS | |
|---|---|---|
| 지문 길이 | 130단어 내외 | 700~900단어 × 3지문 |
| 정보 밀도 | 한 문장도 버릴 수 없음 | 상당 부분이 배경·부연 |
| 핵심 과제 | 지문에 없는 명제를 생성 | 지문에 있는 정보를 확인 |
| 오답 판별 기준 | 논리적 정합성 | 범위 초과·미언급 여부 |
| 시간 압박 | 문항당 사고 시간 | 지문당 처리 속도 |
| Reading | 있음 (추론 편중) | 있음 |
| Listening | 있음 | 있음 |
| Writing | 없음 | 있음 (2개 과제) |
| Speaking | 없음 | 있음 (3부 구성) |
표의 아래 두 줄이 이 기사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수능 영어는 영어의 네 기능 중 두 개를 측정하지 않는다. 학생은 10년 가까이 영어를 준비하고 1등급을 받지만, 그 과정에서 영어로 한 편의 글을 쓰거나 시험관 앞에서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제도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사실 관계다.
국내 입시라는 목적 안에서는 이 설계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수십만 명을 동일 기준으로 채점해야 하고, 채점의 객관성이 흔들리면 제도 전체가 흔들린다. 서술형과 말하기는 그 조건과 충돌한다.
문제는 이 시험을 통과한 능력이 해외 대학이 요구하는 능력과 겹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적다는 데 있다.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이것이 뜻하는 것
모평 1등급은 IELTS 점수를 보장하지 않는다
가장 자주 어긋나는 지점이 Writing과 Speaking이다. 이 두 영역은 국내 시험에서 훈련된 적이 없으므로 사실상 처음부터 시작한다. IELTS 전체 점수는 네 영역의 평균이고, 영국 대학 다수는 각 영역 최저 점수(component score)를 별도로 요구한다. Reading에서 8.0을 받아도 Writing이 5.5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반대로, IELTS 고득점자가 34번을 틀리기도 한다
스캐닝 습관이 강한 학생일수록 지문에 등장한 단어가 포함된 선택지에 끌린다. 위 문항의 1번이 정확히 그 지점을 노렸다. 두 능력은 한쪽이 다른 쪽을 포함하지 않는다.
가장 큰 전환은 Writing Task 2에서 온다
IELTS Writing Task 2는 주어진 주장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논증하는 과제다. 여기서 국내 시험 훈련이 정면으로 걸린다.
국내에서 좋은 답안은 균형 잡힌 답안이다. 양쪽 논거를 공평하게 제시하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서술이 안전하다. 그런데 IELTS Task 2에서 입장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답안은 Task Response 항목에서 감점된다. 채점 기준이 요구하는 것은 명확한 입장(clear position)과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전개다.
같은 문제가 영국 대학 입학 면접에서도 나타난다.
옥스퍼드 지저스칼리지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 대학 정치학 튜터 매트 윌리엄스 박사는, 양쪽 논거를 매끄럽게 정리하고 끝내는 답변을 두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회피형 답변이라고 평가했다. 영어로는 fence-sitting, 담장 위에 앉아 있다는 표현을 썼다. 점심으로 어느 나라 음식을 먹겠느냐고 물었는데 각각의 장점만 늘어놓고 끝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다 듣고 나서도 상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없다.
같은 영상에서 옥스퍼드 재학생 샤론은 이 차이를 직접 겪었다고 말했다. A-Level에서는 양측 논거를 균형 있게 제시하도록 훈련받는데, 옥스퍼드 에세이는 자기 입장을 먼저 세우고 글 전체를 그 중심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본인도 입학 후 조정해야 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A-Level 학생조차 겪는 전환이라면, 균형 서술이 훨씬 강하게 훈련되는 한국 학생에게는 더 큰 폭의 조정이 필요하다.
정리
9월 모평 34번은 잘 만들어진 문항이다. 변별이 되고, 논리적 결함도 없다.
다만 그 문항이 잘 재는 능력과,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필요한 능력이 같지 않을 뿐이다. 34번은 짧은 지문에서 말해지지 않은 결론을 정확히 복원하는 능력을 잰다. IELTS는 긴 지문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정보를 처리하고, 자기 입장을 세워 글로 쓰고 말로 설명하는 능력을 잰다.
국내 시험 성적으로 자신의 영어 수준을 가늠해온 학생이라면, 유학 준비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 기준을 한 번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1등급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등급이 증명한 것이 무엇이고 증명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실용적인 출발점은 단순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두 가지, 즉 영어로 자기 입장을 정해 한 편의 글을 쓰는 일과 그것을 소리 내어 설명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결과가, 국내 시험 성적이 알려주지 않은 부분을 알려준다.
자료 구분
문항 정보(2027학년도 9월 모의평가 영어영역 34번, 고난도 문항 분류, 정답 4번)는 국내 입시 전문 매체 보도에 근거한다. 지문 내용 요약과 선택지 설계에 대한 분석은 본지의 자체 판단이다. 저작권상 지문과 선택지 원문은 전재하지 않았으며, 원문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공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IELTS 문항 유형과 채점 항목에 대한 서술은 공개된 시험 안내 자료에 근거한다. 대학별 요구 점수와 영역별 최저 점수 기준은 대학과 전공에 따라 다르므로 지원 연도의 공식 안내를 확인해야 한다.
옥스퍼드 관련 발언은 Jesus College Oxford가 공개한 영상 “Oxford Tutor & Student REACT to SALTBURN, My Oxford Year & More | What Oxford Is REALLY Like”에서 두 출연자가 직접 밝힌 내용이다.
주의
본 기사는 국내 대학 입시 제도의 타당성을 평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설계된 두 평가 체계가 서로 다른 능력을 측정한다는 점을 유학 준비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