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etflix.com/tudum/my-oxford-year
옥스퍼드가 나오는 네 작품을 짚어보는 시리즈입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연출인지 정리하면서, 장면에 등장하는 영국식 표현도 함께 다룹니다.
두 번째 편은 『마이 옥스퍼드 이어(My Oxford Year)』입니다. 이 작품은 네 편 중 세부 묘사가 가장 정확한 축에 속합니다. 제작진이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만큼, 틀린 부분이 더 헷갈리게 다가옵니다.
이 편에서 다루는 영국 영어 matriculation · subfusc · Sheldonian Theatre · DPhil · seminar · quad · kebab van · elephant’s leg · Cheers · Help yourself · fraternize · safeguarding · rota
어떤 장면인가
석사 과정으로 옥스퍼드에 온 미국인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입학식으로 시작해, 웅장한 목재 패널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수업으로 이어집니다. 원래 가르치기로 되어 있던 교수가 행정 보직을 맡게 되어 자기 박사과정생에게 수업을 넘기고, 채점은 본인이 하겠다고 말합니다.
수업을 맡게 된 박사과정생은 첫 시간에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나타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케밥 노점에 가고, 관계가 발전합니다.
여기서 짚고 갈 영국 영어 — 의례와 제도의 어휘
이 작품에는 옥스퍼드 특유의 의례와 학내 제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사전을 찾아도 감이 오지 않는 것들이라 배경까지 함께 봅니다.
matriculation — 대학에 정식으로 등록되는 의식입니다. 한국어로는 입학식에 가깝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졸업식 같은 격려 연설이 아니라 절차와 전통에 무게가 실린 행사입니다. 동사형은 matriculate입니다.
subfusc — 옥스퍼드의 공식 예복입니다. 라틴어 sub(아래) + fuscus(어두운)에서 왔고, 말 그대로 ‘어두운 색’이라는 뜻입니다. 검은 정장에 흰 셔츠, 나비넥타이, 가운 차림입니다. 입학식과 시험, 학위 수여식에서 착용합니다.
Sheldonian Theatre —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강당으로 입학식과 학위 수여식이 열립니다. theatre가 붙어 있지만 연극 공연장이 아닙니다. 영국 영어에서 theatre는 수술실(operating theatre), 강의실(lecture theatre)처럼 층계식 좌석을 갖춘 공간 전반에 쓰입니다.
DPhil — 옥스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다른 대학의 PhD에 해당합니다. Doctor of Philosophy의 약어인데 옥스퍼드만 이 형태를 씁니다. 서류나 이메일에서 자주 마주치는 표기이니 알아두면 좋습니다. 발음은 ‘디필’입니다.
seminar — 튜토리얼보다 인원이 많은 수업입니다. 경영 계열 과목의 경우 여러 칼리지 학생이 모여 열 명 안팎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quad — quadrangle의 줄임말로 칼리지 안뜰을 말합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같은 공간을 court라고 부릅니다. 옥스브리지 관련 글을 읽을 때 quad가 나오면 건물이 아니라 마당입니다.
kebab van — 밤늦게까지 여는 케밥 노점입니다. 옥스퍼드 도심에 여러 대가 있고 대개 주인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Hassan’s, Nadia’s 같은 식입니다. 밤 외출 후나 다른 식당이 다 닫힌 시간에 학생들이 찾는 곳입니다.
elephant’s leg — 케밥 고기가 꽂힌 회전 꼬치를 부르는 영국 속어입니다. 직역하면 ‘코끼리 다리’인데 생김새에서 온 말입니다. 극 중에서도 이 표현이 나옵니다.
Cheers — 건배할 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고마워”, “잘 가”의 가벼운 인사로 훨씬 자주 쓰입니다. 케밥을 건네받으며 나오는 Cheers도 감사 표현입니다. 영국 생활에서 하루에 여러 번 듣게 되는 단어입니다.
Help yourselves — “알아서 드세요.” 명령형이지만 무례하지 않은 권유 표현입니다. 음식이나 음료를 앞에 두고 흔히 씁니다.
fraternize — 친하게 어울리다. 특히 어울리면 안 되는 상대와 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규정이나 공적 문서에서 자주 보이는 어휘입니다.
safeguarding — 영국 교육기관에서 아동과 취약 계층 보호 체계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알레르기나 안전 문제로 음식 반입이 제한되는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영국 학교 관련 문서에서 매우 자주 나오는 단어입니다.
rota — 당번표, 순번표를 뜻하는 영국식 어휘입니다. 미국의 roster에 해당합니다. 케이크를 매주 돌아가며 가져오는 당번표 같은 데 씁니다.
영화와 현실은 어떻게 다른가
맞는 것이 꽤 많은 대신, 틀린 것들이 더 눈에 띕니다.
입학식 묘사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서브퍼스크 복장도, 셸도니언 극장이라는 장소도 맞습니다. 다만 두 가지가 어긋납니다.
하나는 연설 내용입니다. 실제로는 라틴어 비중이 훨씬 크고, 세상에 나가 최선을 다하라는 식의 졸업식 축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영감을 주기 위한 행사라기보다 전통을 위한 전통에 가깝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부분은 일부에 그칩니다.
다른 하나는 남성 복장의 세부입니다. 원래는 흰 나비넥타이가 규정이지만 검은색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입학식 직후 수업은 없습니다. 주인공이 서브퍼스크를 그대로 입은 채 세미나에 들어가는데, 입학식은 보통 토요일에 열려 곧바로 튜토리얼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목재 패널 세미나실은 있을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의 일부 수업 공간은 실제로 그만큼 웅장합니다. 반면 경영대학원처럼 밋밋한 현대식 공간에서 진행되는 수업도 많습니다. 학생들이 평상복으로 수업에 오는 묘사도 정확합니다.
DPhil 과정생이 가르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박사 과정 중에 튜토리얼과 클래스를 맡는 경우가 많고, 지금 학부생을 가르치는 튜터가 얼마 전까지 DPhil 과정이었던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다만 극 중 설정처럼 박사과정생이 수업을 하고 교수가 채점을 하는 구조는 사실이 아닙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훈련을 받고 자기 자격으로 가르치며, 책임 계통은 있지만 수업과 채점을 나눠 갖지는 않습니다.
교수가 “나는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입 밖에 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케이크는 과장입니다. 수업에 먹을 것을 내오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초콜릿 정도가 오가는 경우는 있지만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오는 장면은 연출입니다. 참고로 영국 학교에서 케이크 당번표(rota) 문화가 있던 시절도 있었으나, 알레르기 등 safeguarding 문제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케밥 밴은 완전히 정확합니다. 극에 나오는 밴은 실제 Hassan’s의 차량에 다른 이름을 덧씌운 것으로 보이고, 케밥을 만드는 역할의 배우도 Hassan 본인에게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 대목은 제작진에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튜터와 학생의 연애는 명백히 금지됩니다. 교원은 학생과 사적으로 얽히지 않도록 교육을 받으며, 권력관계 때문에도 심각하게 다뤄지는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문제 삼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만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작품이 상대를 박사과정생으로, 주인공을 1년짜리 석사생으로 설정한 것도 이 문제를 완화하려는 장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완화될 뿐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리즈 목차 ① 솔트번 — 에세이를 소리 내어 읽는 수업은 이제 없습니다 ② 마이 옥스퍼드 이어 (이 글) ③ 마이 폴트: 런던 — 자가용으로 입주하는 옥스퍼드는 없습니다 ④ 맥스턴 홀 — 3단계 면접도, 압박 테스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고 Jesus College Oxford, “Oxford Tutor & Student REACT to SALTBURN, My Oxford Year & More | What Oxford Is REALLY Like”,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WBBJ11AlvQ
옥스퍼드 의례와 수업 운영에 관한 설명은 위 자료와 옥스퍼드대 공식 안내에 근거합니다. subfusc의 라틴어 어원, quad와 court의 구분, 영국 영어에서 theatre의 용법은 일반 배경지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