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9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본선 3라운드에 한국인 피아니스트 이혁과 이효가 나란히 진출했다. 친형제다.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형제가 동반 본선에 오른 것은 2005년 임동민·임동혁 형제 이후 20년 만이었다.
결선 진출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 형제의 이력에는 결과와 별개로 짚을 만한 것이 있다. 두 사람이 밟아온 유학 경로가 한국에 알려진 음악 유학 상식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앞선 기사에서 다룬 롱티보 우승자 김세현이 미국의 리버럴아츠 대학과 음악원을 결합한 복수학위 트랙을 택했다면, 이 형제는 러시아와 프랑스를 잇는 유럽 전통 음악원 경로를 걸었다. 같은 시기 같은 무대에 선 한국 연주자들이 전혀 다른 길을 통과해 왔다.

형 이혁의 경로
이혁은 2000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화예술학교 영재아카데미를 거쳐 2014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부속)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학사 과정을 밟으며 블라디미르 옵친니코프를 사사했다.
여기서 흔히 간과되는 대목이 있다. 그는 애초 바이올린 콩쿠르를 통해 모스크바 유학길에 올랐고, 유학을 시작하면서 주전공을 피아노로 바꿨다. 세 살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시작했던 이력이 배경에 있다.
2016년 열여섯 살에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1위를 차지했다. 2021년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경로가 한 번 꺾인다. 모스크바 음악원 졸업을 앞둔 시점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고, 2022년부터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았다. 졸업과 함께 코르토 상을 받았다.
같은 해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일본 피아니스트 마사야 카메이와 공동 1위에 올랐다. 이후 NHK 교향악단,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KBS 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동생 이효의 경로
이효는 2007년 1월생으로, 형보다 일곱 살 아래다.
2014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해 2년 동안 바이올린을 공부한 뒤 피아노로 전향했다. 형과 같은 학교, 같은 순서의 전환이다. 이후 형이 졸업한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고, 폴란드 피아니스트 에바 포블로츠카의 지도를 받았다.
2025년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없는 3위에 올랐다. 사실상 첫 국제 무대 입상이었다. 같은 해 쇼팽 콩쿠르 3라운드 진출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연주 성향은 갈리는 편으로 평가된다. 형이 절제된 움직임으로 단단한 선율을 만든다면, 동생은 감정 표현의 폭이 넓고 곡의 화려한 면을 살리는 쪽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오래 공부한 공통점 때문에 두 사람은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작곡가 작품을 듀오 레퍼토리로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19회 쇼팽 콩쿠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2025년 10월 바르샤바에서 열린 대회에는 본선 1라운드에 84명이 올랐다. 한국 국적 피아니스트는 이혁·이효 형제와 이관욱, 그리고 한일 복수국적자 나카시마 율리아까지 4명이었다.
1라운드에서 40명, 2라운드에서 20명으로 줄었다. 이 20명에 형제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함께 2라운드에 올랐던 이관욱은 통과하지 못했다.
3라운드 진출자 20명의 국적 분포는 중국 6명, 폴란드 3명, 일본 3명, 한국·미국·캐나다 각 2명, 말레이시아·조지아 각 1명이었다. 중국의 비중이 눈에 띈다. 쇼팽의 종주국 폴란드와 일본을 합친 수와 같다.
형제는 3라운드에서 멈췄고, 결선 12명에는 들지 못했다. 이혁은 3라운드 직후 인터뷰에서 이 무대가 특별히 더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유학 경로로서 무엇을 시사하는가
첫째, 유럽 음악원 경로에는 ‘학사 4년’이라는 미국식 시간표가 적용되지 않는다.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 예비학교, 음악원 학사, 파리 에콜 노르말의 최고연주자 과정은 각각 성격이 다른 단계다. 특히 프랑스의 최고연주자 과정(Diplôme de Concertiste 계열)은 학위 과정이라기보다 연주자 양성 과정에 가깝다. 한국의 학제나 미국의 학위 체계로 환산해 이해하려 하면 어긋난다.
둘째, 조기 유학이 전제된 경로다. 이혁은 열넷, 이효도 같은 해에 모스크바로 갔다. 두 사람 모두 현지 예비학교 단계에서 시작했다. 학부 지원 시점에 진입하는 구조가 아니다.
셋째, 지정학적 위험이 실재한다. 이혁은 졸업을 앞두고 유학지를 옮겨야 했다. 전쟁으로 러시아 유학 환경이 급변한 사례이지만, 이는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자 정책, 제재, 학위 인정 여부는 학생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며, 장기 유학일수록 노출이 커진다. 이혁의 경우 파리에서 새 경로를 만들어냈지만, 모든 학생에게 그런 대안이 열려 있지는 않다.
넷째, 전공 전환이 가능한 시기가 있다. 두 사람 모두 현악에서 건반으로 옮겼다. 조기에 현지 교육 체계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정이기도 하다.
이혁과 이효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듀오 무대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시리즈 목차 ① 롱티보 우승 김세현은 하버드 영문학도다 — 매년 5~6명 뽑는 하버드–NEC 복수학위 ② 쇼팽 콩쿠르 3라운드 이혁·이효, 왜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옮겼나 (이 글) ③ 옥스퍼드 음악과는 음악원이 아니다 — 오디션 5분, 그러나 에세이 두 편
출처 뉴시스(2025.10.14), 뉴스1(2025.10.13), 한국경제(2025.10.13), 브릿지경제 비바100(2025.10.14), 매일신문 계열 보도(2025.5), 객석(auditorium.kr, 2026.4) 등 국내 보도 제19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공식 홈페이지 발표 자료(라운드별 진출자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