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바닥에 앉고 병동 한 곳에 학생 12명 — 정원만 늘린 확대의 청구서가 돌아왔다
스코틀랜드 의대생의 85%가 “학교에 학생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99%는 파운데이션 과정을 마친 뒤의 실업을 걱정한다고 했다. 영국의사협회 스코틀랜드지부(BMA Scotland)가 3월 12일 발표한 보고서 〈수용 한계를 넘어서(Beyond Capacity)〉의 조사 결과다.
이 보고서가 다루는 것은 스코틀랜드 한 지역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국 의학교육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의대 정원은 늘렸는데 그 뒤에 이어져야 할 교육 인프라와 수련 자리는 늘리지 않았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스코틀랜드는 그 답을 먼저 받아 든 쪽이다.
1. 조사가 보여준 현장
BMA 스코틀랜드 의대생위원회(SMSC)는 스코틀랜드 5개 의과대학 전 학년에 걸쳐 549명을 조사했다. 전체 의대생의 약 8%에 해당하는 표본이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항목 | 응답 비율 |
|---|---|
| 학교에 의대생이 너무 많다 | 85% |
| 현재 인원은 양질의 교육·수련과 양립하지 않는다 | 72.8% |
| 교육·학습 자원 이용이 줄었다 | 약 75% |
| 예정된 임상실습에서 되돌아온 적이 있다 | 60% 이상 |
| 받기로 돼 있던 수업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 | 약 65% |
| 파운데이션 이후 실업이 걱정된다 | 99% |
| 영국을 떠나거나 의료계를 떠날 계획이다 | 약 33% |
던디대 최종학년 학생은 강의 때 바닥에 앉는 일이 있으며 한 병동에 학생이 8명에서 12명까지 몰린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해부학 실습실도 정원을 넘겨 운영된다.
조 페인 SMSC 의장은 현재도 양질의 교육과 졸업생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여건 덕분이 아니라 여건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것이며, 지금 체계는 학자와 의사들의 선의만으로 지탱되고 있고 그 선의는 한계까지 늘어나 무한정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환자 쪽 문제도 지적됐다. 진료나 회진에 학생이 대규모로 배석하면서 환자가 불편을 느끼고, 그 결과 학습 기회 자체가 제한되는 상황이 보고됐다.

2. 숫자: 1,500명이 들어가고 750자리가 있다
보고서의 핵심은 파이프라인 그림이다.
- 입학: 매년 약 1,500명이 스코틀랜드 의대에 들어간다
- 파운데이션(FY1·FY2): 약 1,100자리
- 전문의 수련(specialty training): 약 750자리
매년 약 350명이 스코틀랜드 안에서는 정해진 경로가 없는 상태가 된다. 입학 정원과 수련 일자리의 비율은 대략 2 대 1이다.
누적 규모로 보면 격차는 더 크다. 2015년 3,928명이던 스코틀랜드 의대생은 6,761명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72% 증가다. 페인 의장에 따르면 현재 스코틀랜드의 인구 대비 의대생 수는 잉글랜드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문제는 증가분을 처리한 방식이다. 잉글랜드는 신설 의대를 세우는 방식을 병행했지만, 스코틀랜드는 늘어난 인원을 기존 5개 의대 안에 대부분 흡수시켰다. 건물도 교수도 실습 병원도 그대로인 상태에서 학생 수만 얹은 셈이다. 보고서가 “역량을 강화하려던 확대가 지금은 오히려 신뢰와 유지율, 장기 지속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고 표현한 지점이다.
가르치는 쪽 사정은 더 나쁘다. BMA 의학교원위원회 공동의장 조너선 깁은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난 20년 동안 스코틀랜드 의대에서 일하는 의사(의학 교원) 수는 재정 부족으로 정체 상태였다고 밝혔다. 학생은 72% 늘었는데 이들을 가르칠 임상 교원은 제자리였다는 뜻이다.
3. 스코틀랜드 정부의 대답
스코틀랜드 정부 대변인은 대학이 자율기관이므로 교육과정 제공과 학습 시설은 대학 책임이라고 밝혔다. 학문적 수준과 학생 경험의 질은 스코틀랜드재정위원회(SFC)가 고등교육 질 관리 체계를 통해 점검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련 자리에 대해서는 1,400만 파운드를 추가 투입해 2026년 전문의 수련 자리를 약 10% 늘렸다고 밝혔다. NHS 스코틀랜드 인력은 역대 최고 수준이며 ‘스코틀랜드 미래 의료인력 프로젝트’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보건장관은 최근 BMA 스코틀랜드, 일반의료위원회(GMC) 등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다만 750자리에서 10%는 75자리 안팎이다. 매년 발생하는 350명의 경로 공백을 메우기에는 부족한 규모다.
BMA 스코틀랜드는 세 가지를 요구했다. 학급 규모가 양질의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학생 정원을 긴급 재검토할 것, 의학 교원을 포함한 임상·기초 수련 역량에 투자할 것, 수련 자리 수를 입학 정원에 맞출 것.

4. 우선배정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
2026년 3월 5일 의료수련 우선배정법(Medical Training (Prioritisation) Act 2026)이 국왕재가를 받아 시행됐다. 영국 의대 졸업생과 아일랜드·노르웨이·아이슬란드·스위스·리히텐슈타인 졸업생에게 파운데이션과 전문의 수련 배정에서 우선권을 주는 법이다. 4개 지역 전체에 적용된다.
시행 효과는 실제로 나타났다. 2026년 파운데이션 배정에서 ‘임시배정(placeholder)’ 사례가 크게 줄었다. 일반의(GP) 수련의 경우 사상 처음으로 정원 100%가 영국 졸업생 또는 이미 NHS에서 일하는 지원자에게 돌아갔다. 전년도 62%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문제는 이 법이 다루는 것이 순서일 뿐 총량이 아니라는 점이다. 페인 의장의 지적이 정확히 그 부분을 겨눈다. 영국 졸업생 우선 배정 법안이 도움은 되겠지만, 의대 입학 정원이 수련 일자리의 두 배라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순위 그룹에 든다는 것은 줄의 앞자리를 받는다는 뜻이지, 자리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1,500 대 750은 우선권을 받은 사람들끼리 남은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2026년 파운데이션 배정 결과가 지원자들에게 통보된 날짜는 3월 12일, 〈수용 한계를 넘어서〉가 발표된 바로 그날이었다.
5. 한국에서 스코틀랜드 의대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 사안은 한국 유학생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직접 관련된다.
첫째, 학비 규모부터 확인해야 한다. 스코틀랜드 의대는 영국 안에서도 국제학생 학비가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2026년 입학 기준으로 글래스고 연 6만 2,730파운드, 던디 5만 5,900파운드, 에든버러 5만 4,650파운드(6년 과정), 애버딘 5만 100파운드 수준으로 집계된다. 세인트앤드루스는 3만 9,620파운드로 낮지만 임상 과정이 없는 전임상 전용 과정이며 임상 훈련은 다른 대학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5년 또는 6년 누적으로 25만 파운드 이상, 생활비를 더하면 그 이상이 된다.
이 학비에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항목이 하나 더 붙는다. 스코틀랜드 의대에 다니는 국제학생은 NHS 교육 비용에 기여하는 이른바 ACT 부담금(ACT levy)을 내야 한다. 2016-2017학년도부터 적용됐고 금액은 변동한다. 에든버러대의 경우 대학이 이 부담금 일부를 보조하며 공시 학비에 포함해 표시하고 있다.
둘째, 우선배정법상 지위는 유리하다. BMA 설명에 따르면 영국 의대에 재학하는 국제학생은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영국 졸업생’으로 분류돼 우선순위 그룹에 포함된다. 스코틀랜드 의대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한국 국적 학생은 파운데이션 배정에서 우선권을 받는다.
같은 법이 영국 국적자라도 해외 의대를 나왔다면 2026년 파운데이션 우선순위에서 제외한 것과 대비된다. 기준은 국적이 아니라 학위를 어디서 받았는가다. 말레이시아·몰타 등 영국 대학 해외 캠퍼스 졸업생이 배제된 것도 같은 원리다. 학위 과정의 다수를 해외에서 이수했다면 영국 졸업생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셋째, 그러나 수련 배정과 체류 자격은 별개 제도다. 우선배정법은 수련 자리를 배분하는 규칙이지 영국에서 일할 권리를 주는 제도가 아니다. 졸업 후 체류는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시한이 하나 걸려 있다. 무스폰서 취업비자인 졸업생 루트(Graduate Route)는 2026년 12월 31일까지 신청하면 2년, 2027년 1월 1일 이후 신청하면 박사 학위자를 제외하고 18개월로 단축된다. 파운데이션 과정이 FY1·FY2 2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27년 이후 졸업자는 졸업생 루트만으로 파운데이션 전 과정을 채우기 어려워진다. NHS 고용주를 통한 스킬드워커(Skilled Worker) 비자 전환 시점을 미리 계산해두어야 하는 이유다.
넷째, 확인할 항목은 정해져 있다. 스코틀랜드 의대 진학을 검토한다면 학교 순위나 합격 가능성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
- 해당 대학의 최근 5년간 학년별 정원 변화
- 임상실습 배치 병원 수와 학생 1인당 배치 여건
- 최근 졸업 코호트의 파운데이션 배정 결과(임시배정 비율 포함)
- 국제학생 대상 ACT 부담금 포함 여부와 연도별 인상 폭
- 졸업 후 비자 전환 계획과 NHS 스폰서십 가능 시점
이 가운데 다수는 대학 공식 자료에 명시돼 있지 않다. 입학처에 직접 문의해 서면으로 확보하는 편이 안전하다. 답을 주지 않는다면 그 사실 자체가 판단 근거가 된다.

6. 남는 문제
BMA 스코틀랜드의 경고는 교육의 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 정원을 교육 역량·임상실습·수련 자리·고용 기회에 맞추는 조치가 없다면 스코틀랜드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와 인력 이탈을 감수하게 되고, 미래 의사 양성에 투입한 막대한 공공 재원을 낭비할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상당수가 다른 곳에서 일하기를 택하거나 의료계를 아예 떠날 가능성도 함께 제기됐다.
조사에서 약 3분의 1이 영국을 떠나거나 의료를 그만둘 계획이라고 답한 것은 그 경고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스코틀랜드가 세금으로 길러낸 의사들이 다른 나라 의료체계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의대 정원 확대는 어느 나라에서든 의사 부족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처방이다. 스코틀랜드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그 처방에 반드시 따라붙어야 하는 조건들이다. 가르칠 사람, 실습할 병상, 졸업 후 갈 자리. 이 셋 없이 입학 정원만 늘리면 10년 뒤에 청구서가 돌아온다.
참고자료
- BMA Scotland, 〈Beyond Capacity: The Impact of Increased Medical Student Intake in Scotland〉 (2026.3.12) — https://www.bma.org.uk/our-campaigns/medical-student-campaigns/medical-school-expansion/medical-school-expansion
- BMA, “Medical student numbers overwhelm training facilities” (Jennifer Trueland, 2026.3.12) — https://www.bma.org.uk/news-and-opinion/medical-student-numbers-overwhelm-training-facilities
- BMA Media Centre, “Overcrowded classes putting medical education standards in Scotland ‘at serious risk'” (2026.3.12) — https://www.bma.org.uk/bma-media-centre/overcrowded-classes-putting-medical-education-standards-in-scotland-at-serious-risk
- Wonkhe, “Has Scotland’s medical student expansion outgrown its quality system?” (2026.3.12) — https://wonkhe.com/wonk-corner/has-scotlands-medical-student-expansion-outgrown-its-quality-system/
- Medscape UK, “BMA Warns Scottish Medical Schools ‘Beyond Capacity'” (Rob Hicks, 2026.3.16) — https://www.medscape.com/viewarticle/bma-warns-scottish-medical-schools-beyond-capacity-2026a10007vj
- Yahoo News UK / PA Media, “Medical student numbers in Scotland risking training standards, report warns” (2026.3.12) — https://uk.news.yahoo.com/medical-student-numbers-scotland-risking-103007855.html
- BMA Scotland Council, “ARM 2026 Scottish Council report” (Iain Kennedy, 2026.6.24) — https://bmascotland.home.blog/2026/06/24/arm-2026-scottish-council-report-improving-culture-will-mean-an-nhs-that-is-safer-for-patients-and-doctors/
우선배정법 관련
- BMA, “What we know about the law on UK graduate prioritisation” (최종 수정 2026.6.26) — https://www.bma.org.uk/advice-and-support/career-progression/training/what-the-new-law-means-for-uk-graduate-prioritisation
- NHS England, “Impact of Medical Training Prioritisation Act on specialty training recruitment” (2026.6.21) — https://www.england.nhs.uk/2026/06/impact-of-medical-training-prioritisation-act-on-specialty-training-recruitment/
- House of Commons Library, “The Medical Training (Prioritisation) Bill 2024-2026” — https://commonslibrary.parliament.uk/research-briefings/cbp-10473/
학비·비자 관련
- The UKCAT People, “UK Medical School Fees for International Students 2026” (2026.6.24) — https://www.theukcatpeople.co.uk/post/uk-medical-school-tuition-fees-for-international-students-to-study-medicine
- University of Edinburgh Student Administration, “Medicine fees 2026-2027” — https://registryservices.ed.ac.uk/tuition-fees/find/undergraduate/2026-2027/medicine
- University of Edinburgh Medical School, “EU and International students” — https://medicine-vet-medicine.ed.ac.uk/edinburgh-medical-school/medicine/offers/eu-international-offer
- Davidson Morris, “Graduate Visa Requirements UK 2026” (2026.6.1) — https://immigrationbarrister.co.uk/graduate-immigration-route-for-post-study-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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