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공중보건편 — 의학을 더 크게 보는 네 권

병원 봉사를 하고 의학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영국 의대 면접관 중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의학 발전이 항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과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법이 왜 퍼지는 걸까요?”
이 질문들은 임상 현장이나 윤리 이슈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의학을 역사와 사회, 그리고 과학의 본질과 연결해서 볼 수 있는 학생을 찾는 질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네 권은 바로 그 시야를 넓혀주는 책들입니다.
시리즈 안내
- ① 임상편 — Do No Harm / This Is Going to Hurt / When Breath Becomes Air ✅
- ② 윤리편 — Being Mortal / How Doctors Think / The Checklist Manifesto ✅
- ③ 과학·공중보건편 — The Gene / The Emperor of All Maladies /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 Bad Science (지금 이 글)
책 ① The Gene: An Intimate History
Siddhartha Mukherjee 지음 | 2016

시다르타 무케르지는 컬럼비아 대학교 의대 교수이자 종양학 전문의입니다. 이 책은 유전자의 역사를 다룹니다.
멘델의 완두콩 실험에서 시작해서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까지. 인류가 유전자를 이해하기 위해 걸어온 150년의 여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들도 있습니다. 우생학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된 역사도 이 책 안에 있습니다.
과학은 발전했지만 그 발전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쓰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이 왜 중요한가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의학의 미래가 바뀌고 있습니다. 면접관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 학생인지 궁금해합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학생의 답입니다.
“유전자 치료는 많은 질병을 고칠 수 있어서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은 학생의 답입니다.
“무케르지는 유전자 연구의 역사 안에 우생학이라는 어두운 챕터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CRISPR가 질병 치료를 넘어 인간 능력 향상에 쓰일 때 의사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 이 질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연결됩니다
“유전자 치료의 한계는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의학 발전이 항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사적 맥락까지 갖춰서 답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읽을까
한국어 번역본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까치)가 있습니다. 분량이 상당하지만 소설처럼 읽힙니다. 한국어판 먼저 읽은 후 영어 원서를 읽을 것을 권장합니다.
Netflix에서 Unnatural Selection(한국 제공)을 함께 보면 현재 유전자 편집 기술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YouTube에서 “Mukherjee TED gene” 검색 시 공식 강연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책 ② The Emperor of All Maladies
Siddhartha Mukherjee 지음 | 2010

같은 저자입니다. 같은 시리즈에 두 번 등장할 만큼 중요한 저자입니다.
부제가 “암의 전기(A Biography of Cancer)”입니다. 암의 역사를 인물의 일대기처럼 씁니다.
암이 처음 기록된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 표적 치료제까지. 암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100년 노력입니다. 성공만 있지 않습니다. 수십 년간 틀린 방향으로 달렸던 이야기, 치료보다 해가 더 컸던 시도들도 담겨 있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입니다.
이 책이 왜 중요한가
의학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오래 걸리는지를 이해하는 데 이 책보다 좋은 책이 없습니다.
연구 중심의 의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면접관이 “연구에 관심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 책을 읽은 학생은 구체적인 연구의 역사로 답할 수 있습니다.
“무케르지는 암 연구 100년을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공보다 실패의 이야기였습니다. 수십 년간 잘못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환자가 효과 없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과학적 탐구가 옳은 방향으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이 질문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겼습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연결됩니다
“의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의사와 연구자의 역할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읽을까
한국어 번역본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가 있습니다. 분량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어려우면 관심 있는 챕터부터 읽어도 괜찮습니다.
YouTube에서 “Emperor of All Maladies PBS” 검색 시 PBS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책 ③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Rebecca Skloot 지음 | 2010

1951년,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암세포는 그녀가 동의하지 않은 채 채취되었고, 의학 연구실에 배포되었습니다. 그 세포는 지금도 전 세계 연구실에서 살아 있습니다. HeLa 세포라는 이름으로.
이 세포 덕분에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 암 연구의 기초가 만들어졌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의학 산업이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헨리에타 랙스의 가족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이 왜 중요한가
의학 연구의 윤리, 환자 동의, 인종과 의료의 관계. 이 세 가지 주제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이 질문에 이 책보다 좋은 근거를 주는 책이 없습니다.
“의학 발전은 누구의 희생 위에 있었는가.”
“의학 연구 윤리에서 환자의 동의는 언제부터 중요하게 다뤄졌을까요? HeLa 세포 이야기가 그 출발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가 동의 없이 채취되어 의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 과정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의학이 진보할수록 이 경계선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연결됩니다
“의학 연구에서 윤리적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환자의 동의는 왜 중요합니까?”
사회적 맥락까지 이해하는 의대 지원자라는 인상을 줍니다.
어떻게 읽을까
한국어 번역본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문학동네)이 있습니다. 소설처럼 읽히는 논픽션입니다. 세 권 중 가장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 ④ Bad Science
Ben Goldacre 지음 | 2008

벤 골드에이커는 영국 의사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단순합니다.
왜 사람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법을 믿는가.
홈요패시, 건강기능식품,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의학 공포. 골드에이커는 이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유쾌하고 신랄하게 파헤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더 큰 문제를 지적합니다. 미디어가 의학 정보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제약 회사가 임상 데이터를 어떻게 선택적으로 공개하는지.

이 책이 왜 중요한가
공중보건, 역학,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특히 강력한 책입니다.
영국 의대 면접에서 가끔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MMR 백신과 자폐증의 관계가 가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의학 지식을 묻는 게 아닙니다. 과학적 근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골드에이커는 미디어가 의학 연구 결과를 어떻게 과장하거나 왜곡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연구 하나를 뉴스로 읽을 때와, 그 연구의 샘플 크기와 방법론을 직접 확인할 때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의학 지식뿐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 이렇게 연결됩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법이 왜 퍼진다고 생각합니까?” “미디어의 의학 정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어떻게 읽을까
한국어 번역본 확인이 어렵습니다. 영어 원서를 권장하지만 영어 난이도는 낮습니다. 골드에이커의 문체는 유머러스하고 구어체에 가깝습니다.
Netflix Unwell (한국 제공) 시리즈가 유사한 주제를 다큐멘터리로 다룹니다.
YouTube에서 “Ben Goldacre TED bad science” 검색 시 공식 강연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네 권을 함께 읽으면
The Gene — 유전자 연구의 역사와 윤리 The Emperor of All Maladies — 암 연구 100년의 성공과 실패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 의학 연구 윤리와 환자 동의 Bad Science — 과학적 근거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
네 권 모두 의학을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이 아닌, 사회와 역사와 윤리가 얽힌 복잡한 학문으로 보여줍니다.
면접관이 찾는 학생이 바로 이런 시야를 가진 학생입니다.
세 편을 모두 읽었다면
①편부터 ③편까지 소개한 책은 모두 열 권입니다.
열 권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각 편에서 한 권씩만 읽어도 PS와 인터뷰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읽었느냐가 아닙니다. 읽고 나서 어떤 질문이 생겼느냐입니다.
그 질문이 PS가 됩니다. 그 질문이 인터뷰가 됩니다.
마치며
영국 의대가 PS와 인터뷰에서 찾는 것은 스펙이 아닙니다. 생각입니다.
세 편에 걸쳐 소개한 열 권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의학을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인가.
스펙이 없어서 의대에 떨어지는 학생은 없습니다. 생각이 없어서 떨어지는 학생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리즈: 영국 공대 합격생은 이 책을 읽었다 — 전기·전자·컴퓨터편
참고자료
- Mukherjee, S. (2016). The Gene: An Intimate History. Scribner. | 한국어판: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까치.
- Mukherjee, S. (2010).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 한국어판: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까치.
- Skloot, R. (2010).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Crown Publishers. | 한국어판: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문학동네.
- Goldacre, B. (2008). Bad Science. Fourth E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