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의 결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인류의 모든 무기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열선도, 검은 연기도 막지 못했습니다. 런던은 비었습니다. 그런데 화자가 텅 빈 거리를 걷다 발견한 것은 썩어가는 화성인의 시체였습니다.
세균이었습니다. 지구의 미생물에 면역이 없었던 화성인들은, 인간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들에 무너졌습니다.
이 결말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학교에서 배운 것에서 나왔습니다.
이 편에서 다루는 영어 immunity · microbe · putrefactive · natural selection · atrophy · degeneration · extinction · hubris · Normal School · constituent college · dean · scholarship
그가 다닌 학교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66년 브롬리에서 상점 주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포목상에서 2년간 견습으로 일했고, 미드허스트 그래머스쿨에서 조교사로 일하다 장학금을 받아 사우스켄싱턴의 **노멀 스쿨 오브 사이언스(Normal School of Science)**에 들어갔습니다. 열여덟이었습니다.
이 학교가 지금의 임페리얼칼리지런던입니다.
노멀스쿨오브사이언스는 1881년 토머스 헨리 헉슬리의 주도로 사우스켄싱턴에 설립됐고, 1890년 왕실 인가로 Royal College of Science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1907년 임페리얼칼리지가 왕실 헌장으로 창설될 때 순수과학 학과들이 이 Royal College of Science로 묶여 임페리얼의 구성 칼리지가 됐습니다.
임페리얼 물리학과의 공식 학과사 페이지에 웰스가 학생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1883년부터 1887년까지입니다.
그가 배운 건물은 지금도 서 있습니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헨리 콜 관입니다. 당시에는 이 학교의 가장 유명한 학장이었던 헉슬리의 이름을 따 헉슬리 빌딩으로 불렸습니다.
헉슬리의 실험실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열정적으로 옹호해 ‘다윈의 불도그’로 불린 인물입니다. 그는 영감을 주는 혁신적인 교사였고, 건물 꼭대기 층에 현대적이고 채광과 설비가 좋은 생물학 실험실을 만들었습니다.
그 실험실의 실습에서 학생들은 현미경을 도구로 써서 효모 세포를 비롯한 생물의 구조를 관찰했습니다.
웰스가 1884년 입학했을 때 헉슬리는 그곳에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웰스는 생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학년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교육적인 해”로 회고했습니다.
뒤가 문제였습니다. 물리학과 지질학에서는 부진했습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헉슬리를 교사로서 높이 평가한 반면, 물리학 교수 프레더릭 거스리에 대해서는 그리 좋지 않은 평을 남겼습니다.
수은 유리 기압계를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실패했고,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사실은 뜨거운 유리는 더 이상 빛나지 않게 된 뒤에도 손가락을 델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적었습니다.
SF의 아버지가 임페리얼의 전신에서 남긴 기록입니다.
화성인은 인류의 미래였습니다
1893년, 웰스는 「백만 년 후의 인간(The Man of the Year Million)」이라는 글을 씁니다. 백만 년 뒤 인류가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예측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미래의 인간은 이렇습니다. 영양액이 채워진 대리석 수조에 떠 있고, 거대한 유리 돔에 싸여 있으며, 이제는 거대한 뇌에 조종되는 커다랗고 예민한 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몸은 쪼그라들어 매달린 부속물이 되었습니다.
5년 뒤, 이 이미지가 화성인이 됩니다.
『우주전쟁』의 화성인은 문어처럼 생겼고 몸의 대부분이 뇌입니다.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해 여러 기관이 불필요해졌고, 결국 퇴화했습니다. 남은 것은 뇌와, 뇌의 도구이자 대리인인 손뿐입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화성이 말라붙은 죽은 행성이며 지구의 먼 미래를 보여준다고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웰스는 그 추측에 자기 이미지를 붙였습니다.
즉 화성인은 외계 생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미래상입니다. 인류가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짓밟히는 구도입니다.
그리고 화성인들에게는 면역계가 없습니다. 웰스는 그들이 원래는 면역계를 갖고 있었으나 오래전에 퇴화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기술이 너무 발달해 자기 행성의 질병을 모두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미생물을 제거한 문명이, 미생물에게 당합니다.
결말이 헉슬리의 실험실에서 나온 이유
이제 앞의 두 절을 겹쳐보십시오.
헉슬리의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효모 세포를 들여다본 열여덟 살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가 배운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었습니다. 환경에 적응한 것이 남고 그렇지 않은 것이 사라진다는 원리입니다.
십몇 년 뒤, 그는 기술로 진화를 대체한 문명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명을 적응의 결과물로 죽였습니다.
인간이 살아남은 이유는 강해서도, 똑똑해서도 아닙니다. 수천 년간 지구의 세균과 함께 살아오며 견딜 수 있게 된 몸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화성인은 그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건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생물학 수업의 결론입니다.
웰스는 이 결말을 첫 페이지부터 예고해둡니다. 소설의 첫 문장이 화성인도 인간처럼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읽는 동안에는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짚고 갈 영어 — 진화와 퇴화의 어휘
immunity — 면역. 이 소설의 결말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immune(형용사), immune system(면역계), immunise(면역시키다)로 확장됩니다. 법률 영어에서는 ‘면책’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microbe — 미생물. bacteria보다 넓은 말입니다. 소설에서 화성인을 죽인 것은 putrefactive and disease bacteria, 즉 부패균과 병원균으로 서술됩니다.
putrefactive — 부패시키는. putrefy(썩다), putrefaction(부패)에서 나온 형용사입니다. 라틴어에서 온 격식체 어휘라 일상 영어에는 거의 안 나오지만 생물학과 법의학 문헌에는 자주 보입니다. ①편에서 다룬 법의생태학의 어휘와 이어집니다.
natural selection — 자연선택. 다윈의 개념이고 헉슬리가 옹호한 이론입니다. survival of the fittest는 다윈이 아니라 허버트 스펜서의 표현이며, 여기서 fittest는 ‘가장 강한’이 아니라 **’가장 잘 맞는’**입니다. 한국어 ‘적자생존’의 ‘적’이 바로 그 뜻입니다.
atrophy — 위축되다, 퇴화하다. 화성인의 몸이 쪼그라든 과정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의학에서 근육 위축(muscle atrophy)으로 쓰이고, 비유적으로 기술이나 능력이 쇠퇴할 때도 씁니다.
degeneration — 퇴화. 19세기 후반 영국 지식인 사회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문명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할 수도 있다는 불안입니다. 웰스의 작품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extinction — 멸종. 생물학 용어이자 일상어입니다. become extinct(멸종하다), extinction event(대멸종)로 씁니다.
hubris — 오만.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자기 능력을 과신해 파멸을 부르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한 단어로 말하면 이것입니다. 형용사는 hubristic입니다.
Normal School — ‘보통 학교’가 아닙니다. 교사 양성 기관을 가리키는 말로, 프랑스어 école normale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normal은 ‘규범(norm)’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영어 단어를 한국식 감각으로 읽으면 어긋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constituent college — 구성 칼리지. 하나의 대학을 이루는 단위 기관입니다. 임페리얼은 Royal College of Science, City and Guilds College(공학), Royal School of Mines가 합쳐진 구조였습니다. 런던대학교와 옥스브리지 관련 문서를 읽을 때 반드시 나오는 표현입니다.
dean — 학장. 대학 조직에서 학부나 단과대학의 장을 가리킵니다. 헉슬리가 노멀스쿨오브사이언스의 dean이었습니다. 성당의 ‘주임 사제’라는 뜻도 있어 문맥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이 소설이 영어 학습에 특히 좋은 이유
19세기 후반 영어인데도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웰스는 대학에서 과학을 배운 사람이고, 저널리스트로 일했습니다. 문장이 명료합니다. 같은 시대의 헨리 제임스나 조지 엘리엇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지명이 실제 지명입니다.
원통이 떨어지는 곳은 서리(Surrey)입니다. 실재하는 장소가 계속 나옵니다. ①편 시리즈의 『솔트번』 편에서 다룬 영국 지명 읽기와 이어집니다. 영국 지리에 익숙해지는 부수 효과가 있습니다.
저작권이 만료돼 원문을 무료로 구할 수 있습니다. 1898년 작품입니다.
개인진술서로 옮길 때
공학·물리·생명과학 지원자가 쓰기 좋은 각도가 있습니다. 줄거리가 아니라 이 소설이 과학을 어떻게 쓰는가입니다.
웰스는 당대의 과학 지식(화성 관측, 진화론, 세균학)을 가져와 논리적 귀결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귀결이 이야기가 됐습니다. 이것은 과학적 사고의 훈련이지 공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웰스가 알고 있던 1898년의 세균학 수준에서 이 결말이 어디까지 타당했는가. 지금의 면역학으로 보면 이 설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책이 만든 질문을 어디까지 따라갔는지가 평가 대상입니다. ②편에서 다룬 것과 같은 원칙입니다.
지금 이 학교에 가려면
「영국 대학별 입결 통계 ③」에서 다룬 대로입니다.
임페리얼은 2025년에 33,923건의 지원을 받아 8,143건의 오퍼를 냈고, 3,627명이 입학했습니다. 오퍼율 24.0%, 합격률 10.7%입니다. 정원을 3,845석에서 4,484석으로 늘렸는데도 오퍼율은 27%에서 24%로 떨어졌습니다. 지원자가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표준 오퍼는 A*A*A에서 A*AAA입니다. 전기전자공학 안내에는 “우리는 이보다 높은 오퍼를 자주 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기계공학은 Access to HE Diploma와 T Level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①편의 퍼트리샤 윌트셔가 KCL에 들어간 경로가 여기서는 막혀 있습니다.
웰스는 포목상 견습을 거쳐 장학금으로 이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188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같은 배경의 학생이 같은 학교에 들어가는 길이 그때보다 넓은지는 따져볼 문제입니다.
함께 읽기 [영국 대학별 입결 통계 ③] 임페리얼: 정원을 늘렸는데 합격률은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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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mperial College London, “The story of physics at South Kensington” 학과사 페이지. https://imperial.ac.uk/physics/about-us/department-history/the-story-of-physics-at-south-kensington
- The Microbiologist, “The Stolen Bacillus” (헉슬리의 실험실과 웰스의 재학 시기)
- Science Museum Group, Normal School of Science 항목
- Lapham’s Quarterly, Mike Jay, “The Virus and the Martians” (「백만 년 후의 인간」과 화성인 설정의 연결)
- EBSCO Research Starters 및 Encyclopedia.com, The War of the Worlds 항목
- H. G. Wells, The War of the Worlds, 1898
자료 구분
웰스의 재학 시기와 노멀스쿨오브사이언스의 연혁, 임페리얼과의 관계는 임페리얼 공식 학과사 페이지와 과학박물관 자료에 근거합니다. 헉슬리의 실험실 운영 방식과 웰스의 회고는 전문 매체 기사에 근거합니다. 「백만 년 후의 인간」과 화성인 설정의 연결은 Lapham’s Quarterly 기고문의 해석입니다. 소설 내용과 결말은 백과 항목과 원작에 근거합니다. Normal School, constituent college, dean, natural selection 관련 어휘 해설과 결말을 헉슬리의 생물학 수업과 연결한 서술은 제 판단과 일반 배경지식입니다. 임페리얼 입학 통계와 요건은 「영국 대학별 입결 통계 ③」의 출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