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올소울즈 펠로십 시험… 2010년 폐지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의 실체
옥스퍼드대 올소울즈 칼리지(All Souls College)에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 수업도 학위도 없고, 등록금 수입은 0원이다. 그런데 이 칼리지는 매년 가을 시험을 한 차례 치른다. 1914년부터 2009년까지 이 시험에는 봉투를 열면 단어 하나만 적혀 있는 과목이 있었다. 세 시간, 종이 여섯 장. 그것이 전부였다.
옥스퍼드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래드클리프 스퀘어 동쪽에 이 칼리지가 있다. 1438년 헨리 6세와 캔터베리 대주교 헨리 치첼리가 백년전쟁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담장 안에는 학부생도 대학원생도 없다. 강의와 튜토리얼도 없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졸업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펠로들의 시중을 들 학생을 두기도 했으나 17세기에 없어졌다.
구성원은 전원이 펠로(Fellow)다. 대학이라기보다 연구자들의 클럽에 가깝다. 등록금을 낼 사람이 없으므로 재정은 전적으로 기금에 의존한다. 2023년 기준 기금은 4억 8,670만 파운드이며, 연간 수입의 약 95%가 여기서 나온다.
봉투 하나, 세 시간
문제지에는 질문이 없었다. 물음표도 지시문도 참고 자료도 범위도 없었다. 단어 하나가 전부였다.
전공 구분도 없었다. 법학 응시자와 고전학 응시자가 같은 봉투를 받았다. 시험장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그해의 단어가 무엇인지 들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출제어는 1914년 ‘Culture’로 시작한다. 1928년 ‘Time’, 1952년 ‘Oxford’, 1953년 ‘Happiness’, 1955년 ‘Sin’, 1956년 ‘Islands’, 1958년 ‘Privacy’, 1994년 ‘Miracles’, 2006년 ‘Water’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2009년 ‘Reproduction’이었다.
목록을 세로로 읽으면 시대가 드러난다. 1920년에 ‘Eugenics'(우생학)가 나왔고, 1930년에 ‘Propaganda’가 나온 뒤 3년 만에 독일에 같은 이름의 부처가 생겼다. 1978년 ‘Discrimination’, 1986년과 1987년 연속으로 ‘Race’, 2001년 ‘Diversity’가 출제됐다. 물 부족과 기후 논의가 본격화되던 2006년에는 ‘Water’가 나왔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는 공백이다. 전쟁 중에는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세 차례 출제된 단어는 ‘Style’ 하나뿐이다. 1919년, 1948년, 2005년으로 86년에 걸쳐 있다. 1952년에는 이 대학 자신의 이름인 ‘Oxford’가 출제됐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변별이 안 돼서”
이 시험은 2010년 폐지됐다. 95년 만이었다.
폐지 이유는 난이도가 아니었다. 칼리지 학장 존 비커스는 당시 언론에, 여러 해 동안 이 에세이의 성적이 응시자의 분석 능력을 판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공 시험과 일반 시험 사이의 균형도 에세이 없이 더 나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오랜 전통을 정리하는 데 아쉬움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 이 시험을 치른 응시자의 증언은 더 직접적이다. 한 단어 시험이 가장 기이하긴 했으나 가장 어렵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윤리와 철학과 정치를 폭넓게 묻는 일반 시험 두 과목이 훨씬 힘들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지나치게 열려 있어 응시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끌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불리던 과목이 실은 그 시험에서 가장 무른 자리였던 셈이다.
마지막 출제어가 ‘Reproduction'(재생산)이었다는 점은 공교롭다. 이 단어를 묻고 이듬해, 전통은 재생산되지 않았다.
현재의 시험
시험 자체는 남아 있다. 다섯 과목에서 네 과목으로 줄었을 뿐이다.
이틀에 걸쳐 3시간짜리 네 과목을 치른다. 전공 시험 2과목은 고전학·경제학·영문학·역사학·법학·철학·정치학 중 하나를 골라 응시하며, 두 과목 모두 같은 전공이어야 한다. 이과 시험은 없다. 일반 시험 2과목은 30~40개 문항 중 세 개를 골라 쓴다.
일반 시험 문항이 한 단어 에세이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실제 출제된 문항으로는 “테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카프카가 유언에서 요구한 대로 그의 원고를 태웠겠는가”, “아마존은 문학에 좋은가”, “중국은 과대평가되어 있는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등이 있다.
전공 시험도 좁지 않다. 영문학 시험에는 “다음 중 하나에 대해 쓰시오: 게임, 음식, 신체 부위”가 출제된 적이 있다.
필기를 통과하면 4~6명이 구술시험(viva voce)에 초대된다. 약 25분간 자신이 작성한 답안지를 놓고 질문을 받는다. 새로운 주제를 던지는 자리가 아니라 쓴 것을 방어하는 자리다.
7년, 의무 없음
선출되는 인원은 통상 두 명이다. 한 명만 뽑은 해도, 세 명을 뽑은 해도, 아무도 뽑지 않은 해도 있었다.
합격자는 7년간 칼리지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칼리지 내 숙소와 학기 중 식사, 재정 지원을 받으며 옥스퍼드 학위 과정을 밟는 경우 대학 등록금도 지원받는다.
가르칠 의무는 없다. 정해진 연구 과제도 없고, 학계에 남지 않아도 된다. 법조계·언론·공직·예술·금융으로 진출하는 펠로가 상당수다. 옛 명칭이 ‘프라이즈 펠로십’이었던 이유다. 직장이 아니라 상에 가깝다.
역대 선출자 명단에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T.E. 로런스,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과 데릭 파핏, 해럴드 윌슨 전 총리 등이 올라 있다.
응시 자격은 옥스퍼드대 학위를 보유했거나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등록돼 있고, 전공이 인문·사회 계열이며, 첫 학위를 마친 지 7학기 이내인 경우다. 자격이 유지되는 한 응시 횟수에 제한은 없다.
칼리지는 학부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시험 수준이 높아 합격자는 대체로 높은 1등급 학위를 받고 학부 시절 상을 받았거나 그에 준하는 성취를 한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나란히 붙여두고 있다.
100년에 한 번, 오리를 찾는다
이 칼리지에는 100년 주기의 의식도 있다.
대개 1월 14일, 만찬이 끝나면 펠로들이 횃불을 들고 칼리지 안을 행진한다. 앞장선 사람은 ‘로드 말라드(Lord Mallard)’로 불리며 의자에 앉은 채 들려 다닌다. 칼리지를 지을 때 기초에서 날아올랐다는 전설 속 오리를 찾는 행렬이다.
행렬 선두에는 장대에 오리를 묶어 든 사람이 선다. 원래는 살아 있는 오리였고, 1901년에는 죽은 오리, 2001년에는 나무로 깎은 오리였다.
기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632년 대주교가 이 칼리지를 두고 “어리석은 오리를 핑계로 소란을 피웠다”고 질책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부터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 의식은 2001년에 열렸다. 다음은 2101년이다.
알아두면 좋은 표현
Fellow 칼리지의 정식 구성원이자 운영기구(governing body)의 일원. 선출되는 자리이므로 동사는 be elected를 쓴다. 합격이 아니라 선출이다.
Warden 이 칼리지 수장의 직함. 옥스브리지는 칼리지마다 수장 명칭이 달라 Master, Provost, President, Principal, Rector, Dean, Warden 등으로 갈린다.
endowment / stipend 각각 기금과 수당. stipend는 salary와 달리 노동의 대가보다 생활 유지를 위한 지급에 가깝다.
viva voce 구술시험. 라틴어로 ‘살아 있는 목소리로’라는 뜻이며 줄여서 viva(‘바이바’)로 읽는다. 영국 박사 학위의 최종 관문도 viva다.
paper 논문이 아니라 시험지 또는 과목을 뜻한다. Paper I, Paper II처럼 쓴다.
sit an exam 시험을 치다. 미국식 take가 아니라 sit을 쓴다.
term 학기. 응시 자격의 ‘seven terms’처럼 영국은 시간을 학기 단위로 세는 경우가 많다.
출처
- All Souls College, “Examination Fellowships” (칼리지 공식 페이지 및 FAQ)
- All Souls College, Annual Report and Financial Statements 2022–23
- Jessica Shepherd, “The word on Oxford University’s All Souls fellows exam is: axed”, The Guardian, 2010년 5월 14일
- “Is the All Souls College entrance exam easy now?”, The Guardian, 2010년 5월 17일
- Sarah Lyall, “Oxford Tradition Comes to This: ‘Death’ (Expound)”, The New York Times, 2010년 5월 27일
- The Oxford Student, “All Souls’ one word exam: gone”, 2010년 5월 20일
- Christina Hole, English Custom and Usage (1941)
- 역대 한 단어 출제어 목록은 2011년 정보공개청구(WhatDoTheyKnow)로 공개된 자료에 근거
자료 구분 자격 요건, 시험 과목 구성, 구술시험 방식, 펠로 지원 내용은 올소울즈 칼리지 공식 페이지에 근거한다. 폐지 사유에 관한 학장 발언과 응시 경험자 발언은 2010년 언론 보도에 근거한다. 어휘 해설 중 칼리지 수장 명칭의 다양성, viva voce의 어원, stipend와 salary의 차이, paper의 용법은 공식 문서에 없는 일반 배경지식이다.
주의 응시 자격과 시험 일정은 연도별로 달라진다. 위 내용은 2026년 요강 기준이다.
[② 편] 단어 하나로 세 시간을 쓰는 법 — ‘Style’과 ‘Reproduction’으로 본 답안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