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교 출신 발명가가 세운 두 개의 학교, 그리고 ‘디자인 공학’이라는 전공
내신·수능은 안 본다, 대신 수학만 본다… 임피리얼 다이슨 디자인공학부의 문턱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엔지니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그의 학력을 보면 공학 학위가 없다.
<cite index=”62-1″>다이슨은 1965년부터 1966년까지 런던의 바이엄 쇼 미술학교(Byam Shaw School of Art)에서 회화를 공부했다.</cite> <cite index=”59-1″>당시 독립 미술학교였던 이곳은 2003년 런던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산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통합됐다.</cite> <cite index=”55-1″>이후 그는 왕립예술대학(RCA)으로 옮겨 1966년부터 1970년까지 가구·실내 디자인을 전공했다.</cite> <cite index=”64-1″>최종 학위는 1971년 받은 실내디자인 석사(MDes)다.</cite>
미술학교에서 시작해 디자인 석사로 끝난 이력이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업 엔지니어가 됐다. <cite index=”55-1″>전환점은 RCA였다. 그곳에서 공학과 디자인을 결합했을 때 열리는 창조적 가능성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cite>
흥미로운 것은 다이슨 본인의 회고다. <cite index=”60-1″>그는 RCA 재학 시절 미샤 블랙(Misha Black)이 운영하던 산업디자인공학 과정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며, 블랙은 디자인계의 거물이었고 자신이 그의 수업에 주목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남겼다.</cite>
50년 뒤, 그는 자기가 듣지 못한 그 수업을 통째로 만들어 놓았다.

두 개의 ‘다이슨 학교’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다이슨’이라는 이름이 붙은 영국 고등교육기관은 두 곳이다. 유학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 구분이 결정적이다.
| 구분 |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br>다이슨 디자인공학부 | 다이슨 공과대학<br>(맘즈베리) |
|---|---|---|
| 성격 | 대학 정규 학과 | 기업이 세운 독립 교육기관 |
| 학위 | MEng 디자인공학(4년) | MEng 공학(국제) 4년 |
| 학비 | 국제학생 학비 부과 | 없음 |
| 급여 | — | 연 23,500파운드 지급 |
| 한국 학생 | 지원 가능 | 사실상 불가 |
<cite index=”11-1″>다이슨 공과대학은 2017년 설립됐다. 학비가 없고 학생 전원이 다이슨에 고용돼 연봉 23,500파운드를 받는다.</cite> <cite index=”10-1″>주 2일은 강의실에서, 주 3일은 다이슨 엔지니어들과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최근에는 학위연계 도제 모델을 버리고 고용주 후원 학위로 전환하면서 학생 1인당 25만 파운드를 직접 투자한다고 밝혔다.</cite>
조건만 보면 파격적이다. 그러나 한국 학생에게는 닫힌 문이다. 스폰서십 없이 영국에서 학업과 전일제 근무를 모두 할 권리를 보유해야 하고, 전일제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학생비자는 인정되지 않는다. <cite index=”23-1″>졸업 후 2년 근무 약정까지 포함하면 최소 6년간 취업 자격을 유지해야 하며, 자격을 잃으면 고용이 종료되고 학업도 중단된다.</cite>
‘학비 없이 급여 받는 영국 대학’이라는 정보가 국내에 소개될 때 이 조건이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지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적인 선택지는 임피리얼이다
<cite index=”2-1″>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의 다이슨 디자인공학부(Dyson School of Design Engineering)는 학부 MEng 한 개 과정과 대학원 5개 과정을 운영한다.</cite> 제임스 다이슨 재단이 기금을 댔지만 운영 주체는 임피리얼이며, 일반 국제학생 전형으로 지원한다.
<cite index=”2-1″>이 학부는 디자인 공학을 제조 기법, 제품 개발, 기술 설계, 신속 시제품 제작에 대한 지식을 끌어와 새로운 혁신을 시장에 내놓는 창의적 분야로 정의한다.</cite> <cite index=”8-1″>MEng 과정은 창의성, 컴퓨터 지원 설계, 최적화, 인간공학, 디자인 프로세스, 그리고 신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데 필요한 사업 역량과 산업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 학년에는 재학 중 만든 제품을 실제 시장 반응에 노출시키는 ‘엔터프라이즈 롤아웃’ 모듈로 마무리된다.</cite>
<cite index=”6-1″>1~2학년은 디자인 원리, 수학, 전자, 메카트로닉스, 데이터사이언스 등 기초를 다지고, 3학년에 6개월 유급 산업 실습을 거친다. 과거 실습처에는 다이슨, 재규어랜드로버, 애플 등이 포함된다.</cite>
전형 절차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cite index=”1-1″>2027년 입학부터 ESAT(공학·과학 입학시험) 응시가 선발 요건이다.</cite> <cite index=”5-1″>디자인공학 전형에서는 ESAT 중 수학 1·2만 반영하며, 합격자는 전원 면접을 거친다.</cite>
한국 고교 과정으로는 지원 자체가 안 된다
한국 학생 입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합격 가능성이 아니라 지원 자격이다.
임피리얼이 공개한 국제 자격 인정 목록에는 호주, 홍콩, 인도, 싱가포르, 독일, 프랑스 등 수십 개국의 고교 과정이 등재돼 있다. 한국 고등학교 과정은 그 목록에 없다. 내신이 좋든 나쁘든, 수능 점수가 몇 점이든 서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경로는 사실상 A레벨과 IB 두 가지다. 국내 국제학교나 영국·홍콩·싱가포르 등지의 A레벨 과정, 또는 IB 디플로마 과정을 밟는 것이 출발점이 된다.
| 자격 | 최소 기준 | 지정 과목 |
|---|---|---|
| A레벨 | A*AA | 수학 A* + 나머지 2과목 A (과목 자유) |
| IB | 39~40점 | 수학 HL 7 + 다른 HL 과목 6 |
임피리얼의 파운데이션 인정 과정(UCL UPCSE, 워릭 IFP)이나 미국 AP도 형식상으로는 열려 있지만, 실제 이 경로로 진입하는 한국 학생 사례는 드물다.
그런데 이 학과는 물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짚어야 한다.
영국 공학 계열 진학의 표준 조합은 수학·심화수학·물리 세 과목이다.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항공공학 대부분이 이 조합을 요구한다. 그래서 “영국 공대는 물리 필수”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다이슨 디자인공학부는 다르다. 학부가 공개한 입학 문답에서 A레벨 수학이 유일한 필수 과목이냐는 질문에 학교 측은 그렇다고 답하며, 다른 많은 공학 과정이 물리나 심화수학을 요구하지만 자신들은 디자인 공학이 요구하는 기술적·창의적 역량의 결합을 반영하는 폭넓은 학문적 배경의 학생 집단을 원한다고 밝혔다.
학교가 지원서를 강화한다고 직접 언급한 과목은 심화수학, 디자인 기술(DT), 컴퓨팅, 미술이다. 그 외 관련 과목으로는 과학 과목들과 전자, 통계 같은 기술 계열, 그리고 디자인 계열 과목과 심리학, 철학, 음악, 섬유 같은 창작 계열이 함께 제시된다. 학교는 이 목록에 해당하는 과목을 하나도 듣지 않고 있더라도 지원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 공학이 본인의 관심사·역량·경험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입학시험도 같은 방향이다. 2027년 입학부터 ESAT 응시가 필수인데, 이 학과가 요구하는 모듈은 수학 1과 수학 2 두 개뿐이다. 다른 과목 모듈을 추가로 응시해도 이 학과 전형에서는 반영되지 않으며, 수학 두 모듈만 응시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도 않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 이공계 진학이 내신·수능·과학탐구를 모두 관리해야 하는 종합전이라면, 이쪽은 수학 단일 승부에 창작 이력이 얹히는 구조다. 물리가 약하지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설계다.
다만 성적 자체는 물러서지 않는다
문턱의 모양이 다를 뿐 높이가 낮은 것은 아니다.
학교 측은 A레벨 AAA가 최소 조건이며 그보다 낮은 조건부 합격은 내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면접 결과 등에 따라 오히려 AA*A로 조건이 올라가는 경우는 있다. 2025년 기준 지원자 대 선발 비율은 7대 1이었다.
다만 몇 가지는 한국식 입시와 다르게 작동한다. GCSE 성적은 영어를 제외하면 보지 않는다. A레벨 재응시도 불리하게 보지 않으며, 예측 성적이 AAA 이상이면 한 번에 마친 학생과 동등하게 평가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목을 네 개 이상 이수 중이라면 오히려 세 과목으로 줄이라고 권고한다. AAAA를 A*AA와 동등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합격자 상당수가 A레벨 세 과목만 이수했다는 것이 학교 측 설명이다.
면접에서 갈린다
이 학과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단계는 면접이다.
면접은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를 통한 온라인으로 25분간 진행되며, 11월 초부터 3월 중순 사이에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서류와 ESAT 성적을 기준으로 상위 지원자만 초청된다.
특징적인 것은 사전 과제다. 면접 직전 지원자에게 사전 과제가 이메일로 발송되는데, 학교는 이것이 시험이 아니라 면접관 앞이라는 압박 없이 질문을 미리 준비해볼 기회라고 설명한다. 다만 스케치를 요구받을 수 있으니 종이와 필기구를 준비해 두라고 안내한다. 그림 실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면접에서는 디자인·기술·수학 역량과 지원 동기가 함께 평가된다. 본인 작업물을 소개할 수 있지만 배정 시간은 최대 2분이다. 포트폴리오는 필수가 아니며, 완성작뿐 아니라 진행 중인 작업이나 초기 스케치도 제출할 수 있다.
한 가지 경고도 명시돼 있다. 면접 중 생성형 AI를 사용한 정황 — 화면을 읽거나, 본인의 답변이 아닌 내용을 제시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생성형 AI로 만든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경우 — 이 있으면 지원이 탈락 처리될 수 있다.
지원서 강화 방법으로 학교가 직접 권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무엇이든 만들어보라는 것이 요지로, 무료 온라인 코딩 학습, 칸아카데미를 통한 수학, 골판지 시제품 제작, 고장 난 가전제품 분해, 스케치, CAD 모델링, 레이저 커팅과 목공, 레고 로보틱스, 3D 프린팅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
일정
2027년 입학 기준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다. ESAT 1차 시험은 2026년 10월 12~16일, 2차는 2027년 1월 4~8일에 치러진다. UCAS 지원 마감은 2027년 1월 13일이며, 면접은 2026년 11월 중순부터 2027년 3월까지 진행된다. 모든 지원자는 2027년 3월 31일까지 최종 결과를 통보받는다.
2026-27학년도 기준 해외 학생 학비는 연 45,500파운드였다. 해외 학생을 대상으로 재학 기간 매년 15,000파운드를 지원하는 임피리얼 인스파이어스 장학금이 별도로 운영된다.
졸업 이후 지표는 나쁘지 않다. 2022-23년 졸업생 기준 100%가 취업 또는 진학 상태였고, 이 중 78%가 고숙련 일자리 또는 상위 과정에 진입했다. 이 학위는 영국 공학위원회 산하 세 기관(IED·IMechE·IET)의 인증을 받아, 이수 시 공인기술사(CEng) 등록 요건을 학술적으로 충족한다.
왜 지금 ‘디자인 공학’인가
디자인 공학은 국내 대학 체계에서 대응 학과를 찾기 어려운 분야다. 산업디자인은 조형과 사용자 경험에, 기계공학은 구조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디자인 공학은 그 사이에 선다. 제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정의하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 수 있는 형태로 옮기고, 시장에 내보내는 전 과정을 한 사람의 역량 안에서 다룬다.
로봇청소기, 웨어러블, 전기차 인터페이스, 의료기기처럼 하드웨어와 사용자 경험이 분리되지 않는 제품군이 늘어날수록 이 역량의 값은 올라간다. 기술만 아는 사람도, 형태만 아는 사람도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다이슨이 미술학교 출신이면서 엔지니어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두 언어를 모두 구사했다.
다만, 학교가 가르치지 못하는 것
역설적인 대목은 정작 다이슨이라는 회사의 최근 성적표다.
다이슨코리아가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cite index=”39-1″>2025년 매출은 5,276억 원으로 전년(5,492억 원) 대비 3.9% 줄었고, 영업이익은 160억 원으로 5.3% 감소했다. 2017년 설립 이후 2024년 처음으로 매출이 꺾인 데 이어 2년 연속 실적이 악화됐다.</cite> <cite index=”38-1″>감소 폭이 컸던 해는 2024년으로, 매출은 전년 대비 30.8% 급감했다. 한때 국내 무선청소기 시장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던 다이슨은 경쟁 제품 등장과 AS 문제가 부각되며 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cite> <cite index=”42-1″>현재는 삼성·LG전자에 밀려 10%대로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cite>
원인은 제품 설계가 아니었다. <cite index=”42-1″>삼성전자와 LG전자는 사용자 경험 개선에 초점을 맞춰 3년 만에 판도를 뒤집었다. 카펫을 주로 쓰는 영미권과 달리 장판과 원목 마루를 쓰는 한국 가정 환경을 제품에 반영했고, 먼지 자동 배출도 국내 업체가 먼저 구현했다.</cite> 여기에 사후관리 인프라가 판매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디자인으로 시장을 만들어낸 회사가, 그 시장을 운영으로 지키지 못했다. 이는 다이슨 디자인공학부가 가르치는 커리큘럼의 반대쪽 절반 — 제품이 시장에 나간 뒤의 시간 — 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준다.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이 사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한다. 하나는 디자인과 공학을 잇는 역량이 앞으로도 산업의 핵심 자리에 있으리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역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과 그 제품을 지켜내는 일은 다른 능력이며, 후자는 대체로 학위 이후에 배워야 한다.
문의 및 확인: 임피리얼 칼리지 다이슨 디자인공학부 design.engineering@imperial.ac.uk / 다이슨 공과대학 입학처 admissions@dysoninstitu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