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가 나오는 네 작품을 짚어보는 시리즈입니다. 세 번째 편은 『마이 폴트: 런던(My Fault: London)』입니다. 스페인 시리즈 『마이 폴트』의 영국판으로, 원작에 영국적 요소를 넣는 과정에서 옥스퍼드가 동원된 경우입니다.
이 작품은 네 편 중 틀린 게 가장 적으면서 동시에 알려주는 것도 가장 적습니다. 건물과 장소는 정확한데, 정확한 게 건물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편은 옥스퍼드의 시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는 자료로 읽는 편이 낫습니다.
이 편에서 다루는 영국 영어 Radcliffe Camera · Brasenose · JCR / MCR / SCR · fresher, Freshers’ Week · drive like a dream · muscle power · zero emissions zone · pariah · well off · trope
어떤 장면인가
가족이 고급 승용차에 짐을 싣고 옥스퍼드 도심까지 들어옵니다. 라드클리프 카메라와 브레이즈노즈 칼리지의 항공 촬영이 이어지고, 주인공은 마법사가 되려는 거냐는 농담을 듣습니다. 저녁에 JCR에서 신입생 술자리가 있다는 안내를 받으며 장면이 끝납니다.
여기서 짚고 갈 영국 영어 — 장소와 생활의 어휘
이 편은 건물과 도시 이야기가 중심이라, 옥스퍼드에서 실제로 살게 될 때 마주칠 단어들이 나옵니다. 발음 함정도 하나 있습니다.
Radcliffe Camera — 여기서 camera는 사진기가 아닙니다.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에서 ‘방, 실(室)’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래드클리프 홀’ 정도의 의미입니다. 옥스퍼드를 상징하는 원형 도서관 건물이고, 영상 매체에서 옥스퍼드를 보여줄 때 거의 반드시 등장합니다. 학생들은 줄여서 Rad Cam이라고 부릅니다.
Brasenose — 발음이 함정입니다. **’브레이즈노즈’**로 읽습니다. 라드클리프 카메라 바로 옆에 있어서 화면에 자주 잡히고, 앞서 다룬 『솔트번』에도 등장했습니다.
JCR (Junior Common Room) — 두 가지를 동시에 가리킵니다. 하나는 물리적 공간, 즉 학부생 휴게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학부생 자치 조직입니다. 대학원생 조직은 MCR(Middle Common Room), 교원은 SCR(Senior Common Room)이라고 부릅니다. 옥스브리지 관련 글에서 이 세 약어는 계속 나옵니다.
fresher / Freshers’ Week — fresher는 신입생, Freshers’ Week는 학기 시작 전 신입생 주간입니다. 미국의 freshman에 해당하지만 영국에서는 fresher를 씁니다. 미국식으로 freshman이라고 쓰면 바로 티가 납니다.
drives like a dream — 차가 아주 부드럽게 잘 나간다는 표현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이 흠 없이 작동할 때 like a dream을 붙입니다. It works like a dream처럼 응용됩니다.
muscle power — 힘쓰는 일손. 짐을 옮길 사람이 필요했다는 맥락에서 나옵니다.
zero emissions zone — 옥스퍼드 도심에 시행됐던 배출가스 규제 구역입니다. 규제 대상 차량이 진입하면 요금이 부과됩니다. 영국 도시에는 이 밖에도 LEZ(Low Emission Zone), ULEZ(Ultra Low Emission Zone) 같은 제도가 있습니다. 영국 생활을 앞둔 학생이라면 알아둘 만한 어휘입니다.
pariah — 따돌림받는 사람, 기피 대상. 술을 안 마시면 소외된다는 통념을 언급할 때 쓰입니다.
well off — 부유한. rich보다 완곡하고 일상적입니다. 반대말은 badly off입니다.
trope — 반복해서 쓰이는 상투적 설정이나 장치. 옥스퍼드=부유층이라는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콘텐츠나 문학 이야기를 할 때 매우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영화와 현실은 어떻게 다른가
건물은 맞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릅니다.
건물과 장소는 정확합니다. 라드클리프 카메라도, 브레이즈노즈도 실재하고 위치도 맞습니다. 연속성 오류도 없습니다.
자가용으로 입주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입니다. 옥스퍼드에 개인 차량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상 권장되지 않고, 신입생 안내문에도 가져오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라드클리프 카메라 주변은 주차 자체가 어렵습니다. 배출가스 규제 구역 문제도 있어, 극 중 같은 고급차라면 요금이 붙었을 것입니다. 짐을 내리는 정도는 가능해도 하루 종일 세워둘 수는 없습니다.
JCR 신입생 술자리는 정확합니다. 다만 술을 마시지 않는 학생을 위한 행사도 많습니다. 영국 대학 생활이 전부 술로 굴러간다는 인식, 술을 안 마시면 겉돈다는 인식은 사실이 아닙니다. 영국 대학 전반에 대한 흔한 오해입니다.
부유층 일색이라는 설정은 과장입니다. 부유한 학생이 존재하지만 소수입니다. 2만 6천 명 규모의 학교에서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압도적 다수이며 그것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다닌다는 설정은 현실과 다릅니다.
예쁜 그림의 문제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드론 촬영의 양입니다. 제작진이 원한 것은 정확성이 아니라 예쁜 그림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지점이 있습니다. 옥스퍼드는 다른 어떤 영국 대학보다 영상에 자주 등장하고, 그 덕에 특유의 아우라를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학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지방 출신이거나 가족 중 대학 진학자가 없는 학생에게는 이런 화면이 위압적으로 다가옵니다. 건물은 실제로 아름답고 그 장면들은 실재하지만,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문제입니다.
이 작품이 옥스퍼드에 대해 알려주는 건 결국 건물이 예쁘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시리즈 목차 ① 솔트번 — 에세이를 소리 내어 읽는 수업은 이제 없습니다 ② 마이 옥스퍼드 이어 — 입학식 복장은 맞고, 케이크는 틀렸습니다 ③ 마이 폴트: 런던 (이 글) ④ 맥스턴 홀 — 3단계 면접도, 압박 테스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고 Jesus College Oxford, “Oxford Tutor & Student REACT to SALTBURN, My Oxford Year & More | What Oxford Is REALLY Like”,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WBBJ11AlvQ
옥스퍼드 생활과 학내 조직에 관한 설명은 위 자료와 옥스퍼드대 공식 안내에 근거합니다. camera의 어원, Brasenose 발음, MCR·SCR 구분, LEZ·ULEZ는 일반 배경지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