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에게 영국 의대는 오랫동안 사실상 닫힌 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외국 의대는 38개국 159곳이며, 이 가운데 영국 의대가 14곳이다. 미국(26곳), 필리핀(18곳), 독일·일본(각 15곳)에 이어 국가별로 다섯 번째로 많은 숫자다.
그런데 학교 개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영국 의대를 선택해야 할 진짜 이유는 입학이 아니라 졸업 다음에 있다.
학부로 바로, 그리고 졸업하면 바로 임상 수련
영국 의학교육의 구조는 단순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의대 학부(MBBS·MB ChB)로 들어가 5~6년을 이수한다. 미국처럼 학부 4년을 마친 뒤 다시 의학전문대학원(MD) 4년을 밟는 구조가 아니다. 학부 졸업장이 곧 의사 학위이고, 별도의 대학원 과정이나 의전원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다.
그다음이 핵심이다. 영국 의대를 졸업하면 **UK Foundation Programme(UKFP)**에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신규 의사를 위한 2년짜리 수련 과정으로, 한국의 인턴에 해당하는 FY1(Foundation Year 1)과, 전문의 수련에 들어가기 전 임상 경험을 쌓는 FY2로 구성된다. 여러 과를 돌며 지도 전문의 감독 아래 실제 NHS 환자를 보는, 말 그대로 임상 현장 수련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대목이 나온다. 영국·EU 국적이 아닌 사람이 이 파운데이션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면 영국 의대를 졸업해야 한다. 영국 의대 졸업이 아니면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 국적이든 어느 나라 국적이든 영국 의대를 졸업한 사람은 이 트랙에 올라탈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 밖 의대를 나온 사람은 어떨까. 영국·EU 이외 지역 의대 졸업자는 GMC 임시 등록을 받기 위해 PLAB 시험부터 통과해야 하고, 그마저도 파운데이션 프로그램 진입은 훨씬 까다롭다. 영국 의대 졸업장은 이 관문을 건너뛰게 해주는 입장권인 셈이다.
비자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파운데이션 프로그램 배정을 받으면 프로그램 측에서 Skilled Worker 스폰서십 확인서를 발급해 수련 기간의 체류·근로 자격을 뒷받침한다. 학생 비자로 들어와 졸업하고, 그대로 NHS 수련의로 전환되는 경로가 제도적으로 열려 있다는 의미다.
2026년 법 개정, 기준은 국적이 아니라 ‘어디서 배웠나’
2026년 영국은 Medical Training (Prioritisation) Act를 시행했다. 파운데이션 프로그램 자리를 영국 졸업자와 우선순위 그룹에게 먼저 배정하도록 법으로 못 박은 조치다. 실제로 2026년 배정에서 영국 의대 졸업자가 우선 배정됐고, 아일랜드·노르웨이·아이슬란드·스위스·리히텐슈타인 졸업자가 함께 포함됐다.
언뜻 외국인에게 불리해 보이지만, 정반대다. 이 법의 기준은 국적이 아니라 학위를 어디서 받았느냐다. 실제로 영국 시민권자라도 외국 의대를 졸업했다면 우선 배정 대상이 아니었다. 뒤집으면, 한국 국적 학생이 영국 의대를 졸업하면 영국인과 동일한 우선 배정 그룹에 들어간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면에서 법적 우선권을 확보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이점이 아니다. 영국 의대 진학의 가치는 여기서 결정된다.
다만, 캠퍼스 소재지를 반드시 확인하라
바로 이 지점에 함정이 하나 있다. 영국 의대 소속이라 하더라도 학위 과정의 대부분을 해외 캠퍼스에서 이수한 경우, 파운데이션 프로그램 배정에서 영국 졸업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가정이 아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해외 대학과 공동 운영하는 형태의 의대 설립 제안이 나오고 있고, 국제학생 유치를 전면에 내세운 신설 의대도 늘고 있다. 학교 이름이 영국 대학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수업의 대부분을 어디서 듣는지가 졸업 후 법적 지위를 좌우한다.
문이 열린 이유와, 영국 내부의 경고
영국 정부는 NHS 장기 인력계획에서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연 15,000명으로 두 배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설 의대가 잇따라 문을 열었고, 상당수가 국제학생 비중을 크게 잡았다. 영국 대학 재정난이 겹치면서 높은 등록금을 내는 국제학생이 신설 의대의 핵심 수입원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의 기회는 여기서 생겼다.
그런데 이 흐름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쪽이 영국 의학교육계 자신이다. 국제 학술지 『Human Resources for Health』 2025년 12월호에 실린 논평 「너무 많이, 너무 빨리?」에서 토마스 페레이라와 알렉산더 콜린스는 의대 증원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의 지적은 셋으로 요약된다. 첫째, 인프라가 없다. 영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2000년 3.1개에서 2021년 2.4개로 줄었다. 독일은 8개가 넘는다. 둘째, 인증 체계가 흔들린다. 일부 신설 의대가 GMC 최종 승인 전에 이미 학생을 모집하고 있고, 학생이 존재하는 순간 GMC는 인증을 내줘야 하는 압박에 놓여 품질보증의 순서가 뒤집힌다. 셋째, 가르칠 사람이 부족하다. 영국 의학교육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임상 학술인력의 35%가 55세 이상인데 교원 수는 사실상 정체 상태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수련 병목이다. 파운데이션 이후 전문의 수련 경쟁률이 기록적으로 치솟았고, 최근 전국 조사에서 전문의 수련 자리를 확보할 자신이 있다고 답한 영국 의대생은 23.1%에 그쳤다. 2023년 한 해에만 11,000명 넘는 의사가 영국 진료 면허를 반납했다.
학교를 고를 때 봐야 할 네 가지
이 논문은 비판문이지만, 뒤집어 읽으면 그대로 체크리스트가 된다.
첫째, 캠퍼스 소재지. 앞서 짚은 대로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학위 과정 대부분을 영국 본토에서 이수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둘째, GMC 승인 단계. 최종 승인을 받았는지, 진행 중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승인 전 모집 사례가 실제로 지적된 만큼 학교 홈페이지 문구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셋째, 임상 실습처. 신설 의대의 최대 약점이다. 제휴 병원과 실습 규모가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
넷째, 4년제 단축 과정 여부.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옥스퍼드·맨체스터·워릭·뉴캐슬·스완지 등이 운영하는 4년 과정은 학사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학원 진입(GEM) 과정으로,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정규 경로다. 스완지처럼 해외 졸업생에게 열려 있는 곳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와 별개로 NHS 잉글랜드가 2026년 시작을 목표로 내놓은 고교 졸업생 대상 4년제 직행 학부 과정이다. 버킹엄 의대가 2015년 도입한 4.5년 과정을 GMC가 2019년 인증한 뒤 4년 직행 학위 시범운영을 함께 준비해 왔지만, 앞서 언급한 논문은 핵심 성과의 동등성을 입증한 안전성 근거나 시범평가 결과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의료계 반발도 거세다. BMA는 새 과정을 처음부터 설계해야 하는 만큼 2026년 입학 일정은 달성할 수 없으며, 이미 과중한 학부 과정을 더 압축하면 학생 복지와 임상 준비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에든버러 왕립의사회 역시 4년 학부 과정이 충분한 깊이와 폭을 제공할 수 없고, 그렇게 배출된 의사는 임상 업무에 덜 준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문은 여기에 더해 임상 노출 감소와 국제적 통용성 약화를 우려한다. 한국 복귀를 염두에 둔 학생이라면 교육과정 동등성이 복지부 인정 심사와 직결되는 만큼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복귀를 염두에 뒀다면
절차는 분명하다. 외국 의대 졸업 → 해당 국가 의사면허 취득 → 한국 예비시험 합격 → 의사국가시험 응시 순이다. 현지 면허 취득이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영국에서 파운데이션 프로그램을 거쳐 GMC 정식 등록까지 마치는 경로는 한국 복귀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물론 그 학교가 복지부 인정 명단에 있어야 한다. 인정심사는 국시원이 수행하고 최종 인정 여부는 복지부가 결정하는데, 명단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심사 기간 중 추가될 수 있다. 지원 전에 현재 상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논문이 국제 사례로 인용한 두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저자들은 정원을 60% 늘리려던 정책이 전공의 대규모 사직과 집단행동을 불러온 과정을 짚으며, 정착률과 지역 편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놓친 채 숫자만 늘리려다 갈등을 격화시킨 사례로 평가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영국 의대는 고교 졸업 후 학부로 직행하고, 졸업하면 외국인이라도 임상 수련 트랙에 올라탈 수 있는 흔치 않은 구조를 갖고 있다. 2026년 법 개정으로 그 지위는 오히려 명확해졌다. 다만 그 혜택은 ‘영국에서 배운 영국 졸업자’에게만 주어진다. 학교를 고를 때 캠퍼스가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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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A, “What we know about the law on UK graduate prioritisation”, 2026년 6월. https://www.bma.org.uk/advice-and-support/career-progression/training/what-the-new-law-means-for-uk-graduate-prioritisation
- BMA, “Priority access to specialty training for UK medical graduates”, 2026년 1월. https://www.bma.org.uk/news-and-opinion/priority-access-to-specialty-training-for-uk-medical-graduates
- BMA, “Training in the UK and your visa”. https://www.bma.org.uk/advice-and-support/international-doctors/studying-and-training-in-the-uk/training-in-the-uk-and-your-visa
- The Savvy IMG, “Apply for the UK Foundation Programme as an IMG”. https://thesavvyimg.co.uk/apply-for-the-uk-foundation-programme-as-an-img/
- HealthHireUK, “Applying to the UK Foundation Programme as an IMG”, 2025년 5월. https://healthhireuk.com/new-blog/uk-foundation-programme-for-img
- BMA, “Four-year undergraduate medical degrees”. https://www.bma.org.uk/news-and-opinion/four-year-undergraduate-medical-degrees
- Royal College of Physicians of Edinburgh, “Statement on four-year medical degrees in England”. https://www.rcpe.ac.uk/news/statement-four-year-medical-degrees-england
- Lim JJ, Roberts C, Singh R, Wellington J. “Bridging accelerated medical programmes and workforce demands: a critical evaluation of the four-year direct entry medical degree.” J R Soc Med, 2024.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1572710/
- 한국경제, “보건복지부 인정 외국의대 전체 명단 공개…38개국 159개 대학”, 2023년 7월 10일.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7104015Y
- 베리타스알파, “‘국내면허 취득 가능’ 외국 의대 38개국 159개 대학 ‘공개'”, 2023년 7월 10일.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464379
- 보건복지부, “외국학교 졸업자의 보건의료인국가시험 응시절차”.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2020300
-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직종별 시험정보 — 의사”. https://www.kuksiwon.or.kr/subcnt/c_2007/6/view.do?seq=7
- 공공데이터포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_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외국학교 현황_20260602”. https://www.data.go.kr/data/15126577/fileDat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