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슨 일이 있었나
법무부는 2026년 9월 13일, 중국인 투자자 펑전 민(민펑전)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에서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고 밝혔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는 한국시간 9월 12일 오전 5시 25분경, 민씨가 낸 중재판정 취소신청을 전부 기각했다. 이로써 2024년 5월에 내려진 원 중재판정이 그대로 확정됐고, 정부는 약 2,641억원의 배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취소위원회는 민씨에게 한국 정부가 취소절차에 쓴 소송비용 약 15억 1,283만원과 그 이자까지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취소절차에 들어간 중재비용 42만 6,751달러(약 5억 7,300만원)도 민씨가 전액 부담하게 됐다. 방어에 쓴 국고를 사실상 전액 회수하게 된 셈이다.
2. 사건의 배경 — 왜 청구가 기각됐나
민씨는 2020년 8월, 금융기관의 주식 매각(담보권 실행)과 한국의 민·형사 사법절차가 한·중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최초 청구액은 약 2조원에 달했으나,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약 2,641억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2024년 5월 중재판정부는 민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판단의 핵심은 이것이다. 민씨가 설립한 회사(파이코리아)와 그 주식 취득 자체가,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해 대출을 조달하려던 불법적 계획의 일부라는 것이다. 실제로 민씨는 대출 과정에서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금품을 공여한 사실이 확인돼 2017년 3월 유죄 판결이 확정됐고, 같은 해 7월에는 국내 민사소송에서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바 있다.
중재판정부는 위법하게 취득된 투자는 한·중 투자협정의 보호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판정부에 관할권 자체가 없다고 봤다. 이에 민씨는 2024년 9월 “판정부가 협정과 국내법을 잘못 해석했고 절차적 권리도 보장하지 않았다”며 판정 취소를 신청했지만, 이번에 전부 기각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번 결정으로 “국내법상 위법한 투자는 ISDS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이 다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3. ICSID는 어떤 기관인가
세계은행 산하의 투자분쟁 전문 기구
ICSID(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세계은행(World Bank) 그룹 산하 5개 기관 중 하나다. 1966년 발효된 ICSID 협약(일명 워싱턴 협약)에 근거해 설립됐고, 본부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
회원국은 2026년 7월 온두라스의 비준으로 159개국이 됐다. 한국도 가입국이다. ICSID는 2026년 들어 워싱턴 외 첫 해외 사무소를 싱가포르와 파리에 개설하며 아시아·유럽 쪽 활동을 넓히고 있다.

무엇을 다루는가
ICSID가 다루는 분쟁은 일반적인 상사분쟁과 다르다. “외국인 투자자 대 투자유치국 정부” 사이의 분쟁, 즉 ISDS만을 전문으로 한다. 전 세계 ISDS 사건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처리된다.
규모도 작지 않다. 2025년 7월부터 2026년 6월까지 ICSID가 관리한 사건은 363건으로 단일 회계연도 기준 역대 최다였고, 같은 기간 60건이 새로 접수되고 83건이 종결됐다.
오해하기 쉬운 점 — ICSID는 재판을 하지 않는다
중요한 구분이 있다. ICSID 자체는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다. 사무국(Secretariat)은 사건을 접수·관리하고 절차를 운영하는 행정·법률 지원 조직이다. 실제 판단은 **사건마다 따로 구성되는 중재판정부(통상 3인)**가 한다.
4. 취소위원회(Annulment Committee)란 무엇인가
이번 결정을 내린 ‘취소위원회’는 특히 오해가 많은 기구다.
ICSID 판정은 각국 법원에 항소할 수 없다. 불복 수단은 ICSID 협약 제52조에 따른 취소절차 단 하나뿐이다. 취소신청이 들어오면 원 중재판정부와는 다른 사람들로 3인 위원회가 사건별로 새로 구성된다.
여기서 핵심은, 취소위원회가 항소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인정이 틀렸는지, 법 해석이 옳았는지를 다시 심리하지 않는다. 협약 제52조는 취소 사유를 다음 다섯 가지로 한정한다.
- 중재판정부의 구성이 부적절했을 것
- 판정부가 명백히 권한을 유월했을 것
- 중재인에게 부패가 있었을 것
- 중대한 절차 규칙 위반이 있었을 것
- 판정에 이유가 기재되지 않았을 것
취소가 인용되면 판정이 무효가 되고 새 판정부에서 다시 중재를 해야 한다. 반대로 이번처럼 전부 기각되면 원 판정이 그대로 확정되고, 2차 중재를 청구할 여지도 사라진다. 언론이 이번 결정을 ‘완전승소’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ICSID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대목이 유학·진로를 고민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가장 실질적인 부분이다. ICSID와 관련해 ‘일한다’는 것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갈래로 나뉜다.
(1) 사무국 정직원 — 실제 취업이 가능한 자리
ICSID 사무국은 법률·재무·IT 전문가 70여 명 규모다. 핵심 직군은 **Legal Counsel(법률고문)**이며, 사건 접수와 중재판정부 구성 지원, 그리고 개별 사건의 Tribunal Secretary(판정부 비서) 역할을 맡는다.
전형적인 이력은 다음과 같다.
- 로스쿨 학위(JD 또는 LLB) + 국제법·국제중재 분야 LLM
- 최소 1개국 이상의 변호사 자격
- 대형 로펌 국제중재팀 또는 정부 국제법무 부서에서 5~10년 실무 경력
- 영어에 더해 프랑스어 또는 스페인어(ICSID 공식 3개 언어)
실제 인물을 보면 경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 사무총장 **마르티나 폴라섹(Martina Polasek)**은 체코·스웨덴 이중국적자로, 2001년 ICSID에 counsel로 입사해 2016년 사무차장을 거쳐 2024년 7월 사무총장에 올랐다. 국제투자법 분야 경력만 25년이 넘는다. ICSID 사무총장은 동시에 세계은행그룹 부총재(Vice-President) 지위를 갖는다.
2026년 2월 선출된 사무차장 **가브리엘라 알바레스 아빌라(Gabriela Álvarez Ávila)**의 이력은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 멕시코 국적으로 2000년 ICSID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Senior Counsel까지 올라갔고, 2007년 Curtis 로펌으로 옮겨 이듬해 파트너가 됐다. 2017년에는 멕시코 정부에 의해 ICSID 중재인 패널에 지명됐고, 2021년 DLA Piper 파트너 겸 중남미 중재팀 공동대표를 지낸 뒤 다시 ICSID로 돌아왔다.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에 능통하다.
즉 이 분야는 국제기구와 로펌 사이를 오가는 회전문 구조다. 한 번 진입하면 양쪽을 왕복하며 경력을 쌓는다.
(2) 중재인·취소위원회 위원 — 직원이 아니다
반면 실제 판단을 내리는 중재인과 취소위원은 ICSID 직원이 아니다. 사건마다 위촉되는 외부 전문가이고, 요구되는 이력은 훨씬 무겁다.
- 국제법 분야 석좌급 교수, 전직 국제재판기구 경력자, 전직 대법관
- 국제중재 전문 로펌의 시니어 파트너
- 통상 20~30년 이상의 경력, 연령대는 50~70대
- 회원국 정부가 ICSID 중재인 패널에 직접 지명하는 경로도 존재한다
이 자리는 ‘취업’의 대상이 아니라 커리어의 정점에서 도달하는 위치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6. 한국 학생에게 주는 시사점
이번 사건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해 승소를 끌어낸 주체는 법무부 국제법무국이다. 9월 13일 브리핑도 강준하 국제법무국장이 맡았다. 국제중재라는 분야가 더 이상 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이 길을 밟으려는 학생에게 현실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다.
- 학부 단계: 법학·국제관계·경제학이 표준적인 출발점이다. 영국 LLB, 네덜란드·스위스의 국제법 학부 과정도 유효한 선택지다.
- 대학원 단계: 로스쿨 이후 국제중재·국제투자법 LLM. 하버드, 조지타운, 라이덴, 제네바 IHEID 등이 전통적으로 강하다.
- 초기 실무: 법무부 국제법무국, 김앤장·태평양 등 국내 대형 로펌의 국제중재팀, 외교부 통상 부서가 현실적인 진입점이다. 여기서 ICSID·PCA 등 국제기구 파견이나 이직의 문이 열린다.
- 언어: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 또는 스페인어가 사실상 요구된다. 한국 학생이 가장 과소평가하는 요소다.
- 조기 접점: ICSID는 인턴십 프로그램과 젊은 실무자 네트워크를 직접 운영한다. 학생 단계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접점이며, 아래에서 자세히 다룬다.
7. ICSID 인턴십 — 가장 현실적인 첫 관문
ICSID는 사무국 차원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제기구 인턴십 중에서도 요건이 명확한 편이라, 준비 시점을 역산하기가 비교적 쉽다.
누가 지원할 수 있나
- 대학원 재학생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로스쿨 3학년 진입 예정자(Rising 3L), LLM 과정생, 박사과정생이 대상이다. 학부생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
- 소속 대학의 확인서가 필요하다. 인턴십 기간에 대해 (i) 최소 한 학기 분의 학점을 인정받거나, (ii) 대학으로부터 생활비(stipend)를 지원받는다는 서면 확인을 제출해야 한다. 이 요건이 사실상 가장 큰 진입 장벽이다.
- 비자 요건: F-1 또는 G-4 비자를 보유하거나 취득할 수 있어야 하며, 미국 시민권자·영주권자도 가능하다.
- 재정 요건: 인턴십은 무급이다. 워싱턴 D.C.까지의 항공료, 숙소, 생활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체류 기간 전체에 대한 의료보험 가입 증빙도 요구된다.
- 소속 대학이 정한 인턴십 자체 요건도 함께 충족해야 한다. 학교마다 기준이 달라, 지원 전에 학교 측 확인을 받아두라는 것이 ICSID의 권고다.
선발 기준
경쟁 선발이며, 최소 자격은 다음과 같다.
-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과 국제투자법에 대한 입증 가능한 관심. 관련 수강 이력, 연구 논문, 모의중재 경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Rising 3L·LLM·박사과정 재학 상태
- 영어 능통은 기본, ICSID의 나머지 두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 또는 스페인어 구사자 우대
- 중재·투자법 전반에 걸친 리서치 수행 능력
무슨 일을 하나
인턴은 사건관리팀(case management team) 또는 기관업무팀(institutional team) 중 한 곳에 배치된다.
- 사건관리팀 배치 시: 경험 있는 ICSID Counsel의 지도 아래 사건 행정 업무를 보조한다. 중재·조정 절차 진행, 리서치, 사건 준비 지원이 주된 업무다.
- 기관업무팀 배치 시: 사무총장 및 사무차장의 감독 아래 기관 차원의 쟁점을 연구한다. ICSID 협약 회원국 관련 정책, 중재인·조정인 패널 관리, 공식 문서 개정 같은 업무에 관여하게 된다.
기간은 통상 약 12주(3개월) 풀타임이며, 근무지는 워싱턴 D.C.다.
한국 학생에게 실제로 열려 있는가
열려 있다. ICSID는 2016년 이후 알제리, 캐나다, 칠레, 중국, 크로아티아, 쿠바, 프랑스, 홍콩, 인도, 아일랜드, 대한민국, 레바논, 모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페루, 싱가포르, 스위스, 미국, 베네수엘라 등 20여 개국에서 인턴을 받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국적자가 이미 거쳐간 경로라는 뜻이다.
다만 채용 규모는 매우 작다. 한 기수당 선발 인원이 한 자릿수 수준이므로, 지원 시점보다 그 이전의 준비 이력이 승부를 가른다.
지원 절차 요약
- 본인이 자격 요건(대학원 재학, 비자, 재정)을 충족하는지 확인
- 소속 대학에 학점 인정 또는 스티펜드 지원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확인서 확보
- 학력·경력 자료, 국제투자법·중재·국제공법 관련 수강 이력, 논문·연구물 정리
- 지원 동기서(statement of interest) 작성
- ICSID 인턴십 신청서와 CV를 지정된 방식으로 제출
- 마감 기한 준수
그다음 단계 — Young ICSID와 YP 프로그램
인턴십이 유일한 통로는 아니다.
Young ICSID는 2012년 11월 출범한 젊은 법률가 네트워크로, 45세 미만이면 등록비 없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수는 3,000명을 넘어섰고, 세계 8개 지역 그룹으로 운영되며 각 그룹마다 지역 대표(Regional Delegate)를 둔다. 운영위원회는 ICSID 소속 Legal Counsel들로 구성돼 있다. 가입만으로 행사·교육·컨퍼런스 정보를 받아볼 수 있어, 학생 단계에서 이 분야에 발을 걸쳐두는 가장 비용 없는 방법이다.
한 단계 위로는 세계은행그룹 Young Professionals(YP) 프로그램이 있다. ICSID 배정 YP는 사무국 프런트오피스 소속으로 사무차장의 지도 아래 기관업무를 중심으로 일하며, 중재·조정 절차 지원도 맡는다. YP 아카데미를 통해 어학, 협상, 리더십 훈련과 멘토링을 함께 받는다. 인턴십이 ‘맛보기’라면 YP는 정규 커리어 트랙의 입구다.
준비 타임라인 (역산)
- 학부 2~3학년: 국제공법·국제경제법 수강, 모의중재(Vis Moot 등) 참가, 프랑스어 또는 스페인어 착수
- 학부 4학년~졸업 직후: Young ICSID 가입, 로스쿨 또는 국제법 LLM 진학 준비
- LLM·로스쿨 재학 중: 국제투자중재 과목 이수, 지도교수와 학점 인정 요건 사전 협의, 인턴십 지원
- 졸업 후: 국내 로펌 국제중재팀 또는 법무부 국제법무국에서 실무 경력 축적 → 국제기구 재도전
핵심은 인턴십 그 자체가 아니다. ‘학점 인정 확인서를 써줄 수 있는 대학원’에 들어가 있는가, 그리고 제2외국어를 갖췄는가. 이 두 가지가 한국 학생이 이 관문에서 가장 자주 막히는 지점이다.
8. 맺으며
2조원을 청구당한 국가가 한 푼도 물지 않고 소송비용까지 회수하는 결과는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그 뒤에는 국제법과 외국어, 그리고 수십 년의 실무를 겸비한 사람들이 있다. 이번 승소는 그 직역의 존재를 국내에 다시 각인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2026년 9월 13일 법무부 발표 및 국내 언론 보도, ICSID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