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수능 수학 몇 등급이면 영국 이공계를 준비할 수 있습니까.”
오랫동안 이 질문에는 대략의 답이 있었다. 수학 3등급 정도면 케임브리지나 임페리얼을 목표로 A-Level 수학을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은 갖춘 것으로 봤다. 정확한 기준선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통용되는 감각이었고, 실제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지금은 같은 답을 하지 못한다. 3등급이라는 숫자가 예전과 같은 것을 가리키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같은 숫자, 다른 내용
이유는 단순하다. 등급은 시험 범위 위에서 매겨지는데, 그 범위가 바뀌었다.
예전 3등급은 미적분과 기하를 포함한 범위에서의 3등급이었다. 치환적분을 해봤고 벡터를 다뤄봤으며, 그 위에서 상위 23% 안에 들었다는 뜻이었다. 이 학생이 영국에 와서 A-Level 수학을 시작하면,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미 만난 것이었다. 남은 일은 영어 용어와 서술 방식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2028학년도 수능 수학 출제 범위는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 세 과목이다. 미적분Ⅱ와 기하는 빠졌다. 이 범위에서의 3등급은 치환적분도 벡터도 만나본 적 없는 3등급일 수 있다.
같은 등급이 같은 준비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지표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 지표가 재는 대상이 달라졌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친다. 등급은 상대평가이므로 응시 집단의 구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확률과 통계 응시 비율은 2022학년도 51%에서 2026학년도 56.1%로 높아졌다. 2027학년도 정시에서는 4년제 대학 174곳 중 166곳이 이공계 학과에 미적분·기하를 필수로 지정하지 않았다. 이공계 지망생조차 심화 범위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로 이미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이 요구하는 것은 그대로다
문제는 영국 대학의 요구 수준이 이 변화와 무관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수학 관련 과정의 일반적인 조건은 A*A*A이며, 수학과 심화수학(Further Mathematics) 양쪽에서 A*를 요구한다. 항공공학처럼 Further Mathematics를 필수로 지정하지 않는 과정도 있지만, 대부분 강하게 권장한다. 다만 임페리얼은 학교에서 Further Mathematics를 개설하지 않는 지원자에 대해 예외를 두는 경우가 있다고 안내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Further Mathematics다. 이 과목은 A-Level 수학 위에 얹히는 과정으로, 복소수, 행렬, 미분방정식, 극좌표 등을 다룬다. A-Level 수학의 P3·P4를 마쳤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한다.
정리하면 영국 최상위 이공계가 요구하는 것은 이렇다. 한국 기준으로 미적분Ⅱ와 기하를 마친 뒤, 그 위에 한 층을 더 쌓은 상태. 수능이 지금 재고 있는 범위보다 두 단계 위다.

잃은 것과 얻은 것
공정하게 말하면 이번 개정에서 유리해진 부분도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공통수학1에 행렬을 다시 넣었다. 행렬은 A-Level Further Mathematics의 초반 영역에 해당하므로, Further까지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분명한 이득이다.
하지만 저울은 한쪽으로 크게 기운다. 행렬 한 단원을 얻는 대신 미적분Ⅱ와 기하 전체가 선택 사항으로 밀렸다. 이 둘은 A-Level 수학 후반부 절반을 그대로 차지한다. 얻은 것은 위층의 벽돌 한 장이고, 잃은 것은 아래층 절반이다.
내 판단, 그리고 그 한계
여기부터는 본지의 견해이며 통계로 뒷받침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과거 수학이 강한 학생들을 영국에 보내면서 가장 크게 체감했던 것은 성적 자체가 아니라 여유였다. 수학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니 그 시간이 영어와 다른 과목으로 갔다. 지원서를 쓸 시간도, 면접을 준비할 시간도 거기서 나왔다. 수학이 무기라는 말은 정확히 이런 뜻이었다.
지금은 그 여유를 갖고 오는 학생이 줄었다. 대신 도착한 뒤에 P3·P4를 새로 쌓으면서 동시에 나머지를 준비해야 하는 학생이 늘었다. 그런데도 상당수가 해내고 있다는 점은 따로 기록해둘 만하다. 300시간이 넘는 학습 공백을 스스로 메우고 최상위 성적을 받아 나가는 사례가 계속 나온다. 한국 학생의 학습 역량 자체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다만 그 역량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는 짚어야 한다. 교육과정이 만들어놓은 공백을 학생 개인이 메우고 있다. 제도가 덜어낸 부담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학생과 가정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가 국가 차원의 수학 역량 저하로 이어질지,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 약화로 나타날지는 지금 단정할 수 없다. 개편안이 적용되는 첫 수능이 아직 치러지지 않았고, 심화수학은 진로선택 과목으로 남아 있으며,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한국의 수학 성취도는 여전히 상위권이다. 연구 현장에서도 견해가 갈렸다. 기초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반면, 필요를 느끼는 학생은 따로 배우면 된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상담 실무에서 확인되는 변화는 분명하다. 수능 등급이라는 지표만으로 영국 이공계 준비 상태를 가늠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등급이 아니라 어떤 과목을 실제로 이수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몇 등급입니까”가 아니라 “미적분Ⅱ와 기하를 배웠습니까”다.
자료 구분
2028학년도 수능 출제 범위와 심화수학 제외 결정은 교육부 및 국가교육위원회 발표에 근거했다. 확률과 통계 응시 비율과 2027학년도 정시 전형계획 분석 수치는 2026년 4월 종로학원 발표를 인용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입학 조건은 대학 공개 자료 및 입시 안내 자료를 참고했으며, 과정과 입학연도에 따라 다르므로 지원 전 해당 과정 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한다.
수능 등급과 영국 이공계 준비 상태의 대응 관계, 과거 학생들의 수학 강세와 최근의 변화에 관한 서술은 본지의 유학 상담 및 취재 과정에서 축적된 관찰이다. 통계 조사에 근거한 수치가 아니며 표본의 대표성이 확보된 자료가 아니다. 이 글은 사실 보도가 아닌 발행인 칼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