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우승했다. 2007년생으로 대회 당시 만 17세였다.
국내 보도는 대부분 우승 사실과 ‘제2의 임윤찬’이라는 수식에 집중했다.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대목이 눈에 띈다. 김세현은 하버드대 영문학 학사 과정과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피아노 석사 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다. 두 학교를 오가며 따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두 기관이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5년제 복수학위 프로그램에 속해 있다.
이 트랙은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구조와 지원 방식을 정리한다.
대회 결과부터
김세현은 2025년 3월 30일(현지시간) 파리에서 폐막한 롱 티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결선에서 바스티앙 스틸이 지휘하는 프랑스 공화국 근위대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우승과 함께 청중상, 기자·평론가상, 파리특별상까지 특별상 3개를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다른 참가자와의 실력 차를 이유로 2위를 공석으로 남겼다. 3위는 같은 2007년생인 한국인 피아니스트 이효였다.
롱 티보 콩쿠르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롱과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가 1943년 창설했다. 만 16세부터 33세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국내에서는 예술요원 병역특례 대상 대회로도 알려져 있다.
김세현은 예원학교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뉴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와 월넛힐 예술고등학교를 거쳤다. 2018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2023년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 청소년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현재 NEC에서 당 타이 손과 백혜선을 사사하고 있다.

하버드–NEC 복수학위란 무엇인가
정식 명칭은 Harvard-NEC Dual-Degree Program이다. 5년 과정으로, 하버드에서 학사(AB 또는 SB) 학위를,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음악 석사(MM) 학위를 받는다.
연차별 구조는 다음과 같다.
1~3학년에는 하버드에서 자신이 선택한 전공(concentration)의 학부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동시에 NEC에서 매 학기 실기 개인지도를 받는다. 4학년에는 하버드 학사 요건을 마무리하면서 NEC 석사 과정 요건을 시작한다. 즉 4년 차는 학부 마지막 해와 석사 첫해가 겹친다. 5년 차는 NEC에서만 보내며 석사 학위를 마친다.
하버드 쪽 전공은 음악에 한정되지 않는다. 복수전공이나 공동전공, 부전공도 선택할 수 있다. 김세현이 영문학을 택한 것이 예외적인 조합이 아니라는 뜻이다.
NEC 쪽에는 매년 승급 심사(promotional jury)가 있다. 특히 3학년 말 승급 심사를 통과해야 석사 과정 진입 자격이 확인된다. 입학했다고 자동으로 석사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지원 절차 — 두 번 붙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의 지원 구조가 한국 학생에게 가장 낯선 부분이다.
지원자는 하버드와 NEC에 각각 별도로 지원한다. 두 학교의 원서 모두에 복수학위 프로그램 지원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두 학교에 독립적으로 합격해야 복수학위 프로그램 심사 대상이 된다.
양쪽 합격이 확인된 뒤, 복수학위 프로그램 최종 선발 권한은 NEC에 있다. 하버드 합격만으로도, NEC 합격만으로도 이 트랙에 들어갈 수 없다.
NEC 지원에는 실기 오디션이 포함되며, 지원자가 사사하고자 하는 교수 앞에서 연주하게 된다. 실기 요구 수준은 일반 학부 입학 기준보다 상당히 높게 설정되어 있다.
정원은 매년 5~6명이다. NEC는 이 프로그램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심한 복수학위 과정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편입 경로는 매우 제한적이다. 하버드 1학년 재학생은 NEC 지원과 오디션 절차를 거쳐 편입을 신청할 수 있으나, 2학년 이상은 교육과정 구조상 신청할 수 없다. NEC 학부 재학생이 이 트랙으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슷한 트랙들
NEC는 하버드 외에 College of the Holy Cross와도 5년제 학사·석사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터프츠대와의 프로그램도 있었으나 2023년 가을에 종료됐다.
하버드에는 버클리음대와의 공동 프로그램(Harvard-Berklee Joint Studies)도 있다. 다만 이쪽은 4년제 학부 과정으로, 하버드 학위를 받으면서 버클리 수업을 함께 듣는 구조다. 학위가 두 개 나오는 NEC 트랙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국 학생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첫째, 음악 전공과 학문 전공 사이의 양자택일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실기 진로를 택하는 순간 인문·사회 계열 학업이 사실상 종료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는 두 트랙을 제도적으로 병행시키는 경로가 존재한다.
둘째, 경로가 열려 있다는 것과 접근 가능하다는 것은 다르다. 정원 5~6명에 두 기관 각각의 합격이 선행 조건이라면, 하버드 수준의 학업 경쟁력과 국제 콩쿠르 수준의 연주 실력을 동시에 요구받는다는 뜻이다. 어느 한쪽의 보완재로 다른 쪽을 쓰는 전략은 성립하지 않는다.
셋째, 준비 시점이 이르다. 김세현은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해 NEC 예비학교와 미국 예술고등학교를 거쳤다. 오디션에서 사사 희망 교수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 구조라면, 현지 교수진과의 접점이 지원 시점 이전에 형성되어 있을수록 유리하다. 고3에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아니다.
김세현은 2026년 8월 쇼팽과 포레를 묶은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앞으로 다른 콩쿠르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콩쿠르보다 연주 무대가 더 끌린다는 이유였다.
시리즈 목차 ① 롱티보 우승 김세현은 하버드 영문학도다 (이 글) ② 쇼팽 콩쿠르 3라운드 이혁·이효, 왜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옮겼나 ③ 옥스퍼드 음악과는 음악원이 아니다 — 오디션 5분, 그러나 에세이 두 편
출처 New England Conservatory, “Undergraduate Programs — 5-Year Bachelor/Master’s Programs”, necmusic.edu Harvard University Department of Music, “Harvard University and New England Conservatory of Music Dual Degree Program”, music.fas.harvard.edu Harvard College Admissions, “Dual Programs of Study for Music”, college.harvard.edu NEC Academic Catalog 2024–2025, “Harvard and NEC Dual-Degree” 경향신문(2025.3.31), 한국경제(2025.3.31), 서울신문(2025.4.1), 서울문화투데이, 한국일보(2025.6.26) 등 국내 보도
자료 구분 복수학위 프로그램의 연차 구조, 지원 절차, 정원, 편입 제한, 승급 심사 요건은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 공식 안내에 근거한다. 콩쿠르 결과와 김세현의 학업 이력, 수상 이력은 국내 언론 보도에 근거한다. 한국 학생에 대한 시사점 세 항목은 본지 편집 판단이다.
주의 우승 상금 액수는 국내 보도마다 3만3000유로와 3만5000유로로 엇갈린다. 본문에서는 확정할 수 없어 기재하지 않았다. 복수학위 프로그램의 정원, 지원 요건, 마감일은 연도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지원 연도의 요건은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 공식 입학 안내에서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