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과학 수업에서 시작된 종이비행기, 창업·강연·공연으로 이어진 ‘덕업일치’의 길
60여 개국이 겨룬 ‘종이비행기 올림픽’
연료도 엔진도 없다. 오직 종이 한 장과 사람의 손이 전부다. 이 단순한 조건 위에서 한국인 이승훈 선수가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승훈 선수는 2022년 5월 14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레드불 페이퍼 윙스 세계 결선에서 세계 최고의 곡예비행 선수로 선정됐다. 이 대회는 ‘종이비행기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3년마다 열리는 세계 대회로 50~80개국, 6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회라고 그는 소개했다. 2022년 결선에는 60개국 이상의 선수들이 출전해 멀리 날리기, 오래 날리기, 곡예비행 세 부문에서 새 세계 챔피언을 가렸으며, 참가자 수는 역대 최다였다.
규정은 엄격하다. 기체는 접는 방식으로만 변형할 수 있고 찢기, 풀칠, 자르기, 스테이플러 고정, 무게 추가는 모두 금지되며, 대회는 기네스북 관계자가 감독했다.
14번의 선발전, 60초의 무대
이 선수는 국내에서 14번의 선발전을 거쳐 곡예비행 종목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가 출전한 곡예비행은 60초 동안 각자의 콘셉트에 따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종목이다. 거리나 체공 시간처럼 숫자로 겨루는 종목과 달리, 비행 기술과 연출력이 함께 평가된다. 곡예비행 부문에서는 음악, 의상, 소품, 여러 종류의 종이비행기 사용이 허용됐다.
결선 무대에서 그는 검은 턱시도 차림으로 마술사 같은 안무를 선보이며, 빙글빙글 돌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날개를 퍼덕이는 비행기를 날려 1위를 차지했다. 대회 공식 최종 결과에 기록된 그의 점수는 46점이다.
“10점 팻말 뒤에 2를 붙이더라”
이 점수가 화제가 된 이유는 만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선수는 2023년 2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심사위원 한 명당 최대 점수가 10점인데 앞선 선수들이 이미 40점을 받아 망연자실했고, 모두 만점이면 공동 1위가 되는 것인지 생각하던 중 자신의 연기를 본 심사위원들이 1을 들고 그 뒤에 2를 붙였다는 것이다. 10점 팻말에 다른 숫자를 덧붙여 추가 점수를 준, 일종의 ‘규정 밖 극찬’이었다.
우승 혜택도 독특하다. 상금은 따로 없고 금 트로피를 받지만, 1년에 11번만 뜨는 곡예비행팀 비행기를 타고 조종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우승 직후 금색 종이비행기로 청혼
시상식 이후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연출됐다. 이 선수는 관중 앞에서 금색 종이비행기로 여자친구에게 청혼했고, 여자친구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결선에 여자친구를 데려왔고 우승하면 청혼하겠다고 그날 아침 말해뒀는데 그대로 이뤄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과학 교실에서 시작된 비행
그의 출발점은 교육 현장이었다. 우승 직후 그는 한국에서 과학 수업을 하며 종이비행기를 많이 활용하고 있고, 종이비행기를 가르친 지 7년이 됐다고 밝혔다. 이번 무대를 위해서는 1년 동안 퍼포먼스를 연습했다고 덧붙였다.
세계 무대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2015년 4월 이정욱, 김영준 씨와 함께 우리나라 종이비행기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세계대회 결선에 함께 출전했던 동료들과 이색 스포츠·문화 이벤트 기획사 위플레이(WEPLAY)를 세웠다. 그는 대학 신문 인터뷰에서 종이비행기가 유치원 공작물 정도로만 여겨진다고 아쉬워하며, 국내에서 종이비행기 대회를 여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비주류의 장인’이 만든 직업
현재 그의 활동은 공연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확장됐다. 대회를 열고 싶어 하는 곳에 컨설팅과 운영을 해주고, 학교나 기업에서 종이비행기를 가르치며 교구도 만든다. 직원 7명이 함께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공공 무대에서의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9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한강 종이비행기 축제에서는 세계대회 우승자로서 종이비행기 날리기 시연을 펼쳤다. 2024년 6월에는 국립중앙과학관 대중 강연 시리즈 ‘별의별 과학특강’ 연사로 나섰다. 종이비행기를 날리다 이색 스포츠 마케터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덕업일치 비법노트’를 주제로 강연하고 곡예비행 공연도 선보였다. 당시 과학관 측은 좋아하는 분야에서 꿈과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챔피언이 되고 직업까지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종이 한 장이 남긴 질문
종이비행기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접어본 놀이다. 그러나 이승훈 선수는 그 놀이에 과학 원리와 무대 연출을 더해 세계 정상의 기록으로 만들었고, 다시 그것을 교육과 직업으로 이어갔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도 깊이 파고들면 길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고로 쇼츠 설명에 있던 빨간 코팅지·습도·1mm 튜닝, 댄스 경력, 마술사 협업, 3대 동시 캐치 등은 이번에도 1차 출처를 찾지 못해 제외했습니다. 또 심사위원 수는 이 선수 방송 발언(4명×10점 추정)과 영국 PA 보도(3명)가 엇갈려 본문에서 숫자를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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